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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신영 시인 / 담뱃불 전수조사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30.

김신영 시인 / 담뱃불 전수조사

 

 

휴지를 모으는 옆집 아주머니가

합판을 들이대어 만든

그의 삶처럼 얇은 담벼락에

담배 불똥이 튈까 좁은 길

골목 집집을 전수조사 했다

며칠 전 옮겨 붙은 불이

분명 담뱃불이라 적시했다

 

그의 불안이 활활 타들어가

가재도구에 옮겨 붙는다

이불을 태우고 옷가지를 타고 올라

여름마다 사우나를 내리붓던

옥색 지붕으로 옮겨 붙는다

담뱃불이 살림살이를 넘어

옆집 벽을 타고 오른다

 

문득

조사를 하던

가슴속 차가운 벼랑이

픽, 꺼졌다 다행이다

며칠 수다스런 그의 왕 수선에 놀라

돌아본 뒤꼍에는 지난겨울 내내

어느 고독이 내다 버린 꽁초들

멀리가지 못한

쓸쓸하고 외로운 영혼

 

놀라서 불똥이 튈까

숨죽이고

그저 뒤꼍에나 떨어져

작은 불똥을 황급히 끄는

순한 영혼이

 

옹기종기

좁은 골목에서

보이지 않게

수군거리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2월호 발표

 

 


 

김신영 시인

충북 중원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1994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문학과지성사, 1996)과 『불혹의 묵시록』(천년의시작, 2007), 『맨발의 99만보』(시산맥, 2017)과 평론집 『현대시, 그 오래된 미래』(한국학술정보, 2007)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현재 기독시인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