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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선경 시인 / 그림자놀이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4.

박선경 시인 / 그림자놀이

 

 

  세상은 혼자 놀기 좋은 그림자놀이처럼

  당신과 나 사이를 일렁이지

  여덟 개의 서랍을 차례대로 연 바람의 모양

  성난 커튼을 사이에 둔 것처럼

  우리는 천둥소리를 삼킨 늑대가 되거나

  검은 머리의 독사처럼 정지해 있는

  커튼 뒤, 두 주먹을 치켜세운 마주한 세상

 

  당신과 나는 결투의 한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기 전 무엇으로든 물들어야하는

  스크린 위로 번지는 그림자들의 몽상처럼

 

  날카로운 이빨로 으르렁거리던 두 주먹을 펴고

  날아오르는 작은 새떼들

  우리의 창을 열고 어둠과 어둠을 포개어

  사랑에 빠진 자신을 바라볼 수 없도록 물들어야하네

  창안의 나는 당신이 꿈꾸는 그림자처럼

  창밖의 당신은 내가 꾼 그림자처럼

  흔들리고 있는 커튼 뒤에서

 

  당신과 나를 꿈꾸고 있는 누군가

 

  세상은 혼자 놀기 좋은 그림자놀이처럼

  일렁이는 당신과 나 사이

  바람의 그림자 배꼽 밑의 서랍을 열어 보이네

 

웹진 『시인광장』 2009년 가을호 발표

 

 


 

박선경 시인

1973년 서울에서 출생. 숭의여대,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