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숙 시인 / 기다려지는 카톡
언제부턴가 카카오록을 자주 들어가게 되고 귀 기울이고 기다리게 된다 친구가 매일 보내오는 카톡 아름다운 시어와 아름다운 영상 사랑의 시어들 속에 빠저들어 마음 저리게 감동으로 잔잔하게 파도치는 영혼을 흔드는 시어들 기다려 지는 카톡 귀 기울이고 친구 에게서 보내온 카톡 또 다른 친구 에게 카톡을 보낸다
황인숙 시인 / 길
『내셔널 지오그래픽』 포스터 속의 길은 피려는 것인지 지려는 것인지 모를 꽃송이들을 단 잡목 덤불 사이로 나 있다. 아마 지려는 것인 햇빛 아래 잔돌이 구르는 비탈이다. 온기가 가시지 않은 그 길은 멀리 안개와 구름에 싸인 산맥들과 하늘로 시선을 이끌어, 떨구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내 시선이, 책방을 겸한 문구점이 있는 길거리의 길 위로 돌아오자마자 누군가 나를 향해 돌진하듯, 튀어오른다. 마주 걸어오는 그의 몸의 길은 험준하게 뒤틀려 있다. 안개와 구름에 싸여.
그 길 위에서, 그의 얼굴은 정면을 향해 있고 그의 눈의 길은 곧다. 그래서, 그의 바른 자세는 더욱 비틀려 있다. 힘껏 튈려고 휜 스프링처럼.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中
황인숙 시인 / 꿈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황인숙 시인 / 꿈들
꿈에 나는 타이티나 지중해 아니면 제주 바다를 향해 떠난다 그런데 꿈에 나는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혹은 대합실에서 시간을 다 보낸다
꿈에 나는 거울을 본다 젊고 아리땁다! 나는 하염없이 거울을 본다 꿈이냐 생시냐 의문도 없이 그러다 잠이 깨면 거울을 본다 젊어서 뭐 할 건데? 별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딱히 할 일은 없다
꿈에 나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꿈은 한 권의 책이다 꿈에서도 글자가 가물거려 이따금 나는 등장하지 않는 눈을 가늘게 뜬다 글자를 쓰다듬는 눈의 감각 문장을 핥는 뇌의 감각 끝내주는 글이군, 끝내준다 책장이 넘어간다 그러다 잠이 깬다 그 책이 아직 꿈속에 그대로 있을까. 꿈에서 읽은 책은 누가 지은 것일까?
꿈에 나는 하늘 흐린 바닷가에서 탐스럽게 커다란 조개들 본다 모래 속에 조개들이 지천이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정신 없이 조개를 줍는다 앞자락이 축 늘어지도록 조개를 주워 담는다 그러다 잠이 깬다 꿈인 줄 알았으면 바다나 실컷 볼걸
내 친구는 이런 꿈을 꿨다 구름의 거대한 성곽 위에 커다랗게, 커다랗게 떠오르는 S-A-N-T-A M-A-R-I-A 하늘의 파아랑! 구름의 하아양! 터지는 심장!
황인숙 시인 / 꿈에 깨다
그것은 마른 꽃잎처럼 얇고 아주 가볍다.
쓰디쓴 수액으로 아리고 통통하던 때도 지나고
이제 기억에도 없다.
물결에 흘러가다 찰나, 어른거렸는데
모르겠다. 언제였는지, 왜 그랬었는지, 그러기는 그랬었는지, 모르겠다. 누구였는지, 나였는지 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꿈을 꾸기는 꾼 것인지.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양해열 시인 / 인간의 설계도 (0) | 2020.06.07 |
|---|---|
| 서대경 시인 / 귀가 (0) | 2020.06.07 |
| 천양희 시인 / 단추를 채우면서 외 5편 (0) | 2020.06.07 |
| 조정권 시인 / 튀빙겐 가는 길 (0) | 2020.06.07 |
| 윤진화 시인 / 소주 (0) | 2020.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