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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대경 시인 / 귀가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7.

서대경 시인 / 귀가

 

 

  사내가 퇴근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귀신은 침대 위에 앉아 있다. 벽지가 뜯겨 나간 방 안으로 검푸른 어둠이 일렁인다. 라디오 시그널이 아득히 울린다. 그녀는 라디오 위로 손을 펼친다. 투명한 전파들이 그녀의 손을 통과한다. 열린 창으로 가을의 자장이 밀려든다. 그녀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눈을 감는다. 그녀는 운다. 자장이 옮겨오는 길목마다 일제히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별빛처럼 일어선다.

 

  사내는 홀린 듯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철거 명령 통지서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부서진 담벽 위로 전신주 그림자가 흔들린다. 사내는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을 익숙한 걸음으로 통과해간다. 가을의 자장이 귀신들을 불러 모은다. 사내는 허물어진 집 마당에 서있는 귀신들을 본다. 라디오 시그널이 울린다. 사내는 계단을 오른다. 사내는 난간에 서서 귀 기울인다. 바람이 사내의 넥타이를 흔든다. 삽날을 치켜든 포크레인 그림자가 아파트 담벽을 톱니처럼 긋는다. 문 앞에 선 사내의 얼굴을 긋는다.

 

  더 먹어. 더 먹어. 그녀가 음식을 먹고 있는 사내를 응시한다. 그녀는 사내 앞에 죽은 쥐와 모래가 섞인 검은 비닐봉지를 펼쳐놓는다. 그녀는 사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라디오 시그널이 울린다. 그녀는 사내를 침대로 데려간다. 그녀의 머리칼이 사내의 가슴을 덮는다. 메마른 달빛이 방을 가로지른다. 사내가 팔을 뻗어 라디오 주파수를 돌린다. 그녀의 머리칼이 사내의 어깨를 덮는다. 사내의 구두를 덮는다. 잊지마. 잊지마. 뒤척이는 사내의 얼굴을 덮는다.

 

웹진 『시인광장』 2009년 겨울호 발표

 

 


 

서대경 시인

2004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