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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함태숙 시인 / 화염연꽃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6.

함태숙 시인 / 화염연꽃

 

 

  씨앗은 성질이 캄캄하여

  우주 안에

  제 핵을 숨기고, 아닌 듯

  언 땅 위

  사람으로 섰나니

  어둠은, 물결물결, 물러나고

  자신을 부정한 힘으로

  씨앗은, 터진다, 열사처럼

  한 손의 동맥을 따고

  한 발의 인대를 끊고

  흉부를, 복부를, 좍좍

  난도하고

  삐죽이

  흰 뼈다

  그것마저 부숴야

  화엄만개, 만개하는 거라고, 활활

  불을 놓는다

  슬퍼마라

  내가 이렇게 참혹한 것은

  몸을 드러내는

  나의 방식에 의한 것이니

  여기는 화염 속

  잘 보아라

  지옥 속에 화엄을

  네 가장 깊은 칠흑에, 의당

  삼천대천 세계를

  성질이 캄캄하여, 씨앗은

  제 핵 속에

  우주를 숨기고, 아닌 듯

  슬픈 눈동자로 바라보고 섰나니

  빛은, 참방참방 밀려오고

  이 불탄 시신 앞에

  보아라

  이리로 떠밀려 온 너도

  꽃이거늘

  이 화엄연꽃, 너울너울

  건너오는 한 꽃불이거늘

  타오르는 한 송이거늘

  오, 씨앗은

  너를 피우기 위하여, 캄캄하게

  내가 죽는, 살생

  화염속의 저 살생불이다

  내보이고, 다시

  캄캄히 죽는다

  지금 막, 네가 꽃 필 때

 

웹진 『시인광장』 2009년 겨울호 발표

 

 


 

함태숙 시인

1969년 강릉에서 출생. 중앙대 심리학과, 同 대학원 임상심리학 전공.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