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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 시인 / 스펑나무*
나쁜 혈통이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돌연변이로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왕조가 멸망하고 수천 세기가 흘러 텅 비어버린 시간 속 뽕나무가 아닌 스펑나무로 다시 태어나 악다구니로 견디다가 황토의 수분을 빨아먹으며 사원을 몸속에 내장했다 사원과 뒤섞여 한몸이 된 것은 버려진 야생의 힘이다 거대한 사원을 짊어지고 사는 것도 긍정의 힘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어디에도 돌아갈 곳 없는 누구와도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없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힘이 되어 담을 끌어안고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됐다 한때는 숭배를 받으며 살았다 무성한 뽕나무 밭 아래 숱한 연애들 다산의 기원과 풍요의 주문들 여인들의 베틀 짜는 소리 웃음소리 꿈꾸는 누드처럼 떠다녔다 홍수가 들고 물에 잠긴 사원 물속 오디를 먹고 새들이 누운 똥을 먹으며 스스로 강해지는 불가사의한 힘을 얻었다 바위 속에서도 나는 뿌리를 내렸다 빨리 늙어갔으면 하던 생이 죽으면서 살아나 물에 강해지는 법을 터득했다 세상은 거침없는 나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타프롬 사원을 잠식하고 있는 거대한 나무 이름
웹진 『시인광장』 2009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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