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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애경 시인 / 보문산에는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2.

양애경 시인 / 보문산에는

 

 

  현상금 천만 원,

  키 125센티 체중 23킬로, 9살 여자아이, 자폐아, 하얀 운동화

  문 뒤에 숨어 갸웃 내다보는 눈에

  금방 눈물이 어릴 것 같은 얼굴이 걸려 있고

 

  풀섶 구석구석마다 등산화 신은 사람들이 들어가

  부스럭부스럭 도토리를 줍고 있고

  바닥엔 주인 잃은 껍질이 어지럽게 뒹굴고

  보문산엔 다람쥐 청솔모 꿩 산새들

  내리막 옆 산딸기 넝쿨을 아파트 삼아 참새 떼가 살고

  들쥐 가족이 배수구 밑으로 쏠랑쏠랑 넘어가고

  능선 너머로 노루가 지나가고

  계곡과 연결된 물길엔 수달이 사는데

 

  산 밑 횡단보도에서 빨간 신호등

  -많이도 주우셨네요. 란 옆 아낙의 말에

  -놀면 뭐해요. 좀 주웠죠. 라고 스스로 대견해 하는 할아버지에게

  소리치고 말았다

  -아저씨!

  등산모 쓰고 몸집 자그마한 할아버지가 멈칫

  -산짐승들은 뭐 먹고 살아요?

  -어, 그게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그러게, 사람들이 모두 너무 하잖아요!

  -어, 난 오늘만…

 

  빵 터져버린 나 자신에 놀라

  초록 신호등, 고개 푹 숙이고 건너가 버렸다

  깜짝 놀란 할아버지는 어느 쪽으로 건너셨는지

  척박한 도시의 길 끝, 산에서 나는 건

  도토리 조금 상수리 몇 개 꽃나무에 사람 못 먹는 붉은 열매 몇 개

  떫고 딱딱해 먹지도 못할 사람들 왜 너도나도 봉다리를 들고…

 

  다람쥐 청솔모 꿩, 그리고 산새들과 들쥐들과 노루와 수달

  능선 넘어가다 잃어버린 9살

  글썽한 눈의 여자아이

  한 달째 어디서도 보이지 않고…

 

  서리 오기 전, 언덕에

  여뀌꽃 무릇 쑥부쟁이 달개비

  마지막으로 점점이 푸릇푸릇

  겨우내 그 아이들

  무얼 먹고 사나

 

웹진 『시인광장』 2010년 봄호 발표

 

 


 

양애경 시인

1956년 서울에서 출생. 충남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82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청하, 1988)과 『사랑의 예감』(푸른숲, 1992),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창비, 1992), 『내가 암늑대라면』(고요아침, 2005)이 있음. 현재  '시힘' 과 '화요문학' 동인. 공주영상정보대학 영상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