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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홍수희 시인 / 슬픔이 지나가네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2.

홍수희 시인 / 슬픔이 지나가네

 

 

꽃이 피면

지어야 할 때를

꽃이 알듯이

 

바람이 불면

잦아들 때를

바람이 스스로 알고 있듯이

 

우리들 사랑도

머무를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알고 있다면

 

희망이여,

무에 슬픔이고

좌절이고 있겠습니까

 

있으라 하면

있으라 하신 그 자리에

물러나 있으라 하면

물러나 있을 그 자리에

 

제 자리를

흐뭇이 지키겠으니

조금의 여유인들

부리겠으니

 

당신은

언제나 내 것,

슬픔은

저만치 지나갑니다

 

 


 

 

홍수희 시인 / 십자가 아래서

 

 

고독과 고통을 음미하라!

아주 천천히

 

그리하여 그곳에서

마침내 단맛이 나게 하라!

 

그때 비로소,

고독은 기도가 되고

고통은 은총이 되리라!

 

 


 

 

홍수희 시인 / 십자가의 길

 

 

내가 나를

업고 가는 길입니다

내가 나를

참아주며 걸어가는 길입니다

끊임없이

내가 나를 실망시킬 때에

나에게는 내가

가장 큰 절망이 될 때에

내가 나를 사랑함이

미워하는 것보다 어려울 때에

괜찮다

토닥이며 가는 길입니다

위로하며

화해하며 가는 길입니다

십자가는

밖에 서 있지 않고

십자가는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휘청이며 넘어지며

깨닫는 그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

내가 나를 만나는 길입니다

 

 


 

 

홍수희 시인 / 아름다운 선물

 

 

내 삶에 그대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자주 만나진 비록 못하여도

못 견디게 외로웁거나

때로 기쁨으로 가슴 벅찰 때

전화를 걸면

언제나 거기 있어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운 사람.

 

한숨을 지으면

한숨을 짓는 대로

웃음을 웃으면

웃음을 웃는 대로

물어보지 않고도

느끼는 사람

보지 않고서도

나눌 수 있는 사람.

 

삶이란 그렇게 울고 웃으며

함께 걷는 것이라고

나란히 말할 수 있는

그대는

나에게 소중한 선물...

 

그대가 있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홍수희 시인 / 아름다운 발자국

 

 

세상

수많은 발자국 속에

흔들리는 발자국 보입니다

 

때로는 왼쪽으로

때로는 오른쪽으로

때로는 멈추어 서서

방향을 고뇌한 흔적

 

한참을 선 자리만

지켜보다가 다시 시작한

발자국도 보입니다

삶의 무게에 휘둘려

넘어졌다 일어선

발자국도 보입니다

 

세상

수많은 발자국 속에

유독 흔들리는

발자국 정겹습니다

 

세상

직선 위의 발자국 속에

가끔은 뒤돌아본

발자국 아름답습니다

 

흔들리며 뒤척이며

걸어가는 길, 사랑으로

가는 바로 그 길입니다

 

 


 

홍수희 시인

1995년 문예지 <한국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 이육사문학상 본상, 부산가톨릭문학상 본상을 수상. 부산가톨릭 문인협회, 부산 문인협회, 부산 시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시집으로 [달력 속의 노을](1997,  도서출판 빛남)과 [아직 슬픈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2003, 도서출판 띠앗), [이 그리움을 그대에게 보낸다](2007, 도서출판 한솜), [생일을 맞은 그대에게](2019, 도서출판 해드림)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