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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복효근 시인 / 늦가을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1.

복효근 시인 / 늦가을

 

 

  술 덜 깬 아침 한 나절

  약속 어긴 것 화 안 내고

  혼자서 지리산 둘레길 산행 나가는

  낡은 아내 미웁지 않다

 

  혼자 돌아가는 음악

  무슨 뜻인지 몰라 소프라노

  낯선 나라 말 그냥 악기소리처럼 싫지 않다

 

  너무 많은 나에게 내가 지쳐서

  전화 한 통 없는 이 쓸쓸함이 좀 오래 갔으면 한다

 

  마당귀엔 산에서 옮겨 심은 용담

  그 꽃잎 벌리는 의뭉스런 햇살 손길

  내 몸이 다 간지럽다

 

  벌 한 마리 꽃우물에 빠져 맴돌고

  가만가만 진저리쳐대는 꽃

  저들의 한 바탕 음화 같은 풍경에

  때 아닌 내 거시기가 선다

 

  무리에서 쳐져서 산다는 부끄럼 말고도

  쳐진 자만이 아는 권태로운 즐거움도 있어

  아주 먼, 여자를 떠올리며 수음을 했다

 

  이 좀스러운 외도가 그리 죄스럽지 않은

  마흔 아홉 늦은 가을

 

웹진 『시인광장』 2010년 12월호 발표

 

 


 

복효근 시인

1962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등이 있음. 1995년 '편운문학상 신인상',  2000년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