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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은창 시인 / 바람에게 묻는다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1.

양은창 시인 / 바람에게 묻는다

 

 

  대나무 숲은 바람의 층계다.

  한 층 오를 때마다 더해지는

  흔들림의 강도

  우리도 한때 아찔한 높이로 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팽팽한 탄력은 언제나 제 자리로 돌아오는 법

  참, 고마웠다고, 평생 잊지 않겠다는 말

  부질없다.

  늘어선 경계의 위태로운 혼들에게 보내는

  경배의 눈길도 거두어라.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곧은 몸매로 매섭게 버티는 건

  태생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비어있는 몸

  단 한 번의 절망으로도

  파멸에 이르는

  저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니라면

  안녕이라는 말, 부디 행복하라는 말

  한 마디도 나는 버겁다.

  바람으로 쌓아올려 바람으로 무너지고

  말로 쌓아 올려 말로 무너지는 여기는

  시방 첩첩이 쌓아올린 푸른 뼈들의 무덤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0년 12월호 발표

 

 


 

양은창 시인

경남 산청에서 출생.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90년 《한국문학》 신인상 시부문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이어도는 서울에 있다』(1991)와 『내 그리운 운문의 시대』(1998)가 있음. 현재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