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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현 시인 / 딜런(Dylan)*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1.

김현 시인 / 딜런(Dylan) *

 

 

  딜런이 성 빈센트 식물원*에 심어진 건 3년 전 일이다. 다음은 그녀에 대한 영화이다.

 

  담쟁이넝쿨의 짙푸른이 창틀을 비집고 들어온 어느 금요일과는 다른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딜런은 읽고 있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덮고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바지를 내리고 팬티를 벗었다.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숙였다. 두 손으로 엉덩이를 스렁스렁 벌렸다. 항문의 둘레에 돋아난 새싹들의 야들야들이 한눈에 보였다. 딜런은 엉덩이를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직감적이었다.

 

  딜런이 미네소타로 떠난 지 수개월이 지난 백 년만이었다. 딜런의 시간 속에서 딜런의 피부는 블루블루 늘어져 내렸다. 푸르고 넓은 이끼는 거무튀튀한 불알과 자지를 뒤덮었다. 단정한 생머리는 보랏빛 산발이 되었다. 죽음의 생기가 박진감 넘쳤다.

 

  딜런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딜런은 편지를 들고 매일 밤을 향했다. 구름을 쬐고 달이 부는 대로 흔들렸다. 딜런은 신선한 해골이 되어 가며 잊지 못할 충만감에 삐쩍 젖었다.

 

  딜런은 편지봉투를 열었다. 발톱이 빠지고 발목까지 찢긴 발가락들이 세발낙지처럼 꿈틀거렸다. 딜런은 살아 움직이는 뿌리에 감탄했다. 식물의 본질에 알맞은 전환이라 생각하며,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내려놓았다. 딜런의 편지를 불 싸질렀다.

 

  식물성인간*을 관리하는 짐머맨은 잠든 딜런을 조심스럽게 관으로 옮겼다. 성 빈센트 식물원으로 가는 덜컹대는 어둠 속에서 딜런의 눈동자는 죽은 눈물의 냄새를 풍기며 제자리를 빠져나왔다. 눈구멍은 닫히고 지워졌다. 뾰족한 두 귀가 소리 없이 떨어져 나갔다. 얕은 콧대는 더 얕게 주저앉았다.

 

  로톨로 화단에 심어진 딜런은 손색없는 식물의 형상이었다. 부채꼴로 펼쳐진 보라 이파리들과 연결된 얇고 긴 파랑 줄기는 자연스러웠다. 그제야 딜런의 마지막 인간적인 입술이 얼마나 오래 서 있어야 산은 바다가 될까 딜런을 내뱉으며 합 닫쳤다. 그녀가 딜런으로 명명되는 끝과 시작의 순간이었다.

 

  딜런은 숨죽인그늘식물로 분류되었다.

 

*1)성 빈센트 식물원에서 발행된 식물도감『바람만이 아는 대답』에 의하면, 비교적 빛이 약한 식물원의 습윤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여성식물로, 강한 빛에서는 오히려 생장이 저해되어 죽는다. 동지(冬至)에 한 번 한 개의 꽃망울을 틔우는데, 봉오리가 열리며 피어오르는 흰 꽃가루를 가리켜 숨이라고 부른다.

 

*2)미네소타에 있는 식물원. 시인 딜런 토머스가 숨을 거둔 병원에서 이름을 따왔다. 식물원의 끝과 시작까지 줄곧 집사 로버트 알렌 짐머맨이 관리하고 있다.

 

*3)육체적으로는 동물성을 타고 났으나, 본래는 식물성인 인간을 일컫는 말. 본래는 엽록소 중독 환자들을 빗대어 부르는 말로 사용되었다.

 

웹진 『시인광장』 2010년 11월호 발표

 

 


 

김현 시인

강원도 철원에서 출생. 2009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