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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병수 시인 / 낡은 액자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9.

박병수 시인 / 낡은 액자

 

 

  그림을 보네 액자 속의 한 여자를 바라보네 여자, 나룻배를 닮은 광주리를 이고 전라의 하룻밤 건너가고 있네   

 

  결혼반지 같은 신음 같은 까만 공기방울들이 괄호 속에 갇혀 여기저기 떠있네 누구도 본 적 없는 여자의 발자국이 액자 속에 갇혀 순장 당한 세월을 돌아보고 있네 입술조차 가지지 못한 여자, 좁은 액자 속에 수십 개의 물방울을 찍으며 날아오르고 있네

 

  날개는 벽 속에 감추어 둔 틀림없는 참새,  

 

  재잘거림에 밤새 귀가 아팠네 내 눈에서 뻗어나간 탯줄 하나 여자의 배꼽에 묶였다가 떨어져 나간 자리 무척 아팠네 어떤 이가 상실한 여자의 배꼽과 지워진 자궁을 오래도록 고민하다 깜빡 잠이 들었네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네 그러나 나는, 지난밤 사라진 여자의 흔적조차 그릴 수 없네

 

웹진 『시인광장』 2010년 봄호 발표

 

 


 

박병수 시인

2009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하반기 신인상 당선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