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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혜영 시인 / 키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12.

조혜영 시인 / 키질

 

 

늦가을 콩밭에서

어머니 거둬들인 콩나락

키질을 하는데

킬킬킬

흰콩이 볶아대듯 달아난다

 

성한 놈은 성한 놈끼리

깨진 놈은 깨진 놈끼리

못난 놈은 못난 놈끼리

혼돈 속에서 한데 뭉치다

알맹이는 키 안에서 웅크리고

 

무지랭이 앞 다투어 경계를 넘는다

 

 


 

 

조혜영 시인 / 공짜

 

 

아는 사람들이 가끔 책을 써서 내면

그동안 나는 적어도

한 권쯤은 보내주지 않을까 기다렸다

 

대부분 가난한 그들이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책을 받으면 그들이

더욱 가난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동지애와 문학적 끼는 나누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내심 한 권쯤 보내주지 않을까 기다렸다

 

책 한 권 사서 그들의 밥이 따뜻해지길 바라는 맘으로

이제부터는 그 당연한 일을 과감하게 해야겠다고

맘 고쳐먹었는데

 

오늘 그 책 한 권을 받고 말았으니.

 

21인 신작시집 『꽃이 핀다 푸른 줄기에 』,[작가들]에서

 

 


 

 

조혜영 시인 / 봄에 덧나다

 

 

아무 생각 없이 봄볕에 쪼그리고 앉아

푸성귀 다듬는데

난데없이 산꿩이 짖는다

가슴이 데인 듯 아프다

언제 적 놀란 가슴이었던가

지하실에 갇혀

각목 날아들며 살 터지던 소린가

술 냄새 풍기며 젖꼭지 건드리던

그 비릿한 웃음소리인가

 

난데없이 짖어대는 꿩! 꿩! 소리에

새가슴이 되어 철렁 내려앉는다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이건만

 

이 시린 상처는

죽어야 낫는가

 

 


 

조혜영 시인

1965년 충남 태안 출생. 2001년 제9회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 수상. 시집『검지에 핀 꽃』『봄에 덧 나다』(푸른사상사. 2012)가 있음. 노동자 시인으로 <검지에 핀 꽃>은  2005년 ‘힘내라 한국문학’ 2/4분기 이 달의 우수문학도서에 선정됨. 인천노동자문학회, 전국노동자문학연대 활동. 현재 인천작가회의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