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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영 시인 / 키질
늦가을 콩밭에서 어머니 거둬들인 콩나락 키질을 하는데 킬킬킬 흰콩이 볶아대듯 달아난다
성한 놈은 성한 놈끼리 깨진 놈은 깨진 놈끼리 못난 놈은 못난 놈끼리 혼돈 속에서 한데 뭉치다 알맹이는 키 안에서 웅크리고
무지랭이 앞 다투어 경계를 넘는다
조혜영 시인 / 공짜
아는 사람들이 가끔 책을 써서 내면 그동안 나는 적어도 한 권쯤은 보내주지 않을까 기다렸다
대부분 가난한 그들이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책을 받으면 그들이 더욱 가난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동지애와 문학적 끼는 나누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내심 한 권쯤 보내주지 않을까 기다렸다
책 한 권 사서 그들의 밥이 따뜻해지길 바라는 맘으로 이제부터는 그 당연한 일을 과감하게 해야겠다고 맘 고쳐먹었는데
오늘 그 책 한 권을 받고 말았으니.
21인 신작시집 『꽃이 핀다 푸른 줄기에 』,[작가들]에서
조혜영 시인 / 봄에 덧나다
아무 생각 없이 봄볕에 쪼그리고 앉아 푸성귀 다듬는데 난데없이 산꿩이 짖는다 가슴이 데인 듯 아프다 언제 적 놀란 가슴이었던가 지하실에 갇혀 각목 날아들며 살 터지던 소린가 술 냄새 풍기며 젖꼭지 건드리던 그 비릿한 웃음소리인가
난데없이 짖어대는 꿩! 꿩! 소리에 새가슴이 되어 철렁 내려앉는다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이건만
이 시린 상처는 죽어야 낫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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