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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성 시인 / 앙코르와트
종종 왕도 한 번씩은 신을 만나고 싶었다 거추장스런 위엄과 모든 짐 내려놓고 신과 합일한 후 가난한 마음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간 깊이 닫아 두었던 교만의 우물 때론 왕이라도 손댈 수 없는 일 아무도 모르게 고하고 신과 함께 하늘을 날고 싶었다 어깨동무하고 세상 굽어보며 천상주 한 잔을 마시면 꿈틀대며 발버둥치는 욕계의 백성도 긍휼하리라
오로지 제국의 왕만이 내딛던 천상의 계단 21세기 서민이 네 발로 기어오르고 있다 그 높은 탑에 황금태양이 걸려 있을 것 같은데 노오란 햇살이 얼굴을 비비는 텅 빈 제단 시들어가는 풀잎 몇 포기 촛대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천상의 여신도 왕과 밀월여행을 떠나버렸다 멀리 색계가 보이는 신의 문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카메라 받아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 주더니 1달러 구걸하는 까만 자야바르만*의 후손 문득 미군병사에게 ‘기브 미 초콜릿’을 연발하던 50년대 전후 조국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신과 독대하지 못하고 내려오는 길 마치 비워진 마음이 바람의 수수깡 같아 왕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떨며 기어 내려왔을까
인간이 가장 힘겹다는 경사 70° 계단 속죄하듯 매일 오르내린 왕은 위대한 통치자가 되었다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천년의 계단 위에서 자야바르만을 만나리라 제 안에 비로소 무색계의 풀잎 한 장을 담자 그제야 신과 함께 훨훨 날아 현기증에 떨며 뒤로 엎드려 네 발로 기어 내려온다
* 앙코르 왕국을 연 크메르족의 왕
웹진 『시인광장』 2010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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