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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소유 시인 / 바람의 세기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12.

박소유 시인 / 바람의 세기

 

 

  몇 개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바람의 세기가 바뀌는 중이다

 

  그 힘을 믿거나 혹은 믿지 않거나

  유랑극단이나 실크로드 같은

  바람으로 떠밀려 가는 곳은 어디나 있게 마련이다

  오리나무 낮달처럼 가깝고도 아주 먼 내륙에서 발원된,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닌

 

  바람은 기막힌 복화술을 지녔다

  먼 곳에서 들리는 듯 다른 소리를 내지만

  실은 한숨이나 휘파람처럼

  내 안에서 빠져 나오는 소리들

  어느 것도 바람 없이 움직이려 하지 않기에

  나도 모르게 빌미를 주고 마는 거

 

  그래서 귀에 들리는 건 모두 바람소리다

  잠시 잠깐이다

  만질 수는 없으나 거죽이 있어 변신과 합체가 순간이니

  눈에 보이는 건 또한 바람뿐이다

  몇 세기를 바꾸며 단 한 번도 달려보지 못했던 내가

 

  쉿, 지금 이 길로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10년 8월호 발표

 

 


 

박소유 시인

1961년 서울에서 출생. 198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1990년 《현대시학》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