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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희 시인 / 머나먼 동행
오늘은 나뭇가지 끝에 바람이 매서워요 그 매서움 끝으로 시퍼렇게 날을 세운 슬픔이 가슴께를 콕콕 쑤시고 지나가요
별보다 멀리 사는 그대여, 그대가 거기서 아프면 내가 여기서 아프고 내가 여기서 흐뭇하면 그대가 거기서 흐뭇해요
카시오페이아자리보다도 페가수스자리보다도 머나먼 곳에 사는 그대여, 아프지 마오
홍수희 시인 / 바위섬
울고 싶다고 다 울겠는가 반쯤은 눈물을 감추어두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 사는 것이 바다 위의 바위섬처럼 종종 외롭고도 그렇게 지친 일이지만 가끔은 네 어깨와 내 어깨를 가만히 대어보자 둘이다가도 하나가 되는 슬픔은 또한 따스하다 울고 싶다고 혼자 울겠는가 반쯤은 눈물을 감추어두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
홍수희 시인 / 벚꽃 지는 날
사랑이라고 다 사랑이 아니었구나 지천으로 피어 있던 너의 이름도 안아주고 싶었던 너의 슬픔도 눈꽃 같던 눈꽃 같던 너의 참회도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권태로 다가오느니
하늘은 저 하늘에 있는 게 아니었구나 내 마음에 또 다른 우주(宇宙)가 있어 그 곳에 비 내리고 바람이 불면 그 곳에 천둥 울고 벼락이 치면 그리움에 커 가던 나무 한 그루 산산이 부서지어 숯이 되느니
뜨락에 피던 꽃도 꽃이 아니었구나 눈물도 눈물이 아니었구나
홍수희 시인 / 별 바라보기
너를 보면 알 것 같다 왜 질퍽이는 절망 속에 빠져있을 때 가물가물 저기 희망이 보이는 건지 새벽은 왜 침침한 어둠의 끝자락을 붙들고서만 조심조심 피어나는지 희망은 절망의 오래된 친구 너를 잡으려하면 슬픔을 먼저 사귀어야 하네
홍수희 시인 / 별이 지기 전에
사람 속으로 들어갈수록 외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낯익은 얼굴들이 오히려 낯선 얼굴일 때가 있습니다
밖으로 나갔던 내 마음이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여
문밖에서 오랫동안 쓸쓸하게 서성거리는 날은
키만 멀쑥이 커버린 가로등도 골목에 부끄럽게 숨어버리고
내가 사는 마을에 어둠이 와도 불 밝혀줄 점등인이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사랑하는 일이 나를 잊는 일보다 더 어려워
풀잎처럼 파르르 흔들거리는 날에 별빛 하나 추억처럼 깜박이는데
벗이여, 저 별이 지기 전에 나는 나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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