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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동확 시인 / 말뚝망둥어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18.

임동확 시인 / 말뚝망둥어

 

 

  누군가 보기에 필시 목선 한 척 갯벌에 처박힌 채 대책 없이 낡아가는 순천만 한 구석

 

  위태롭고 초라한 오막살이 구멍 한 채는, 노을 지는 가을 하늘보다 붉고 성난 파도보다 힘센 영혼의 식구들이 깃들기에 넉넉한 크기와 체온을 가진 살림집이었지요

 

  거기서 난 밀물 드는 밤이면 아가미로 숨 쉬며 비할 데 없이 평화로운 침묵을 즐겼던 게으름뱅이,

 

  잘 발달한 가슴지느러미를 끌과 정으로 찰진 갯바닥에 일생의 비밀을 새겨놓거나 꼬리지느러미를 치켜세운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그만 먼 수평선 혹은 지평선에 갇혀 어쩔 줄 몰라 하던 어린 말뚝망둥어,

 

  때로 발정기의 암컷을 두고 등지느러미를 꼿꼿이 세운 채 꼬박 한 나절 동안 으르렁거렸던 한갓 불량한 수컷일 뿐이었지만,

 

  때때로 먹이를 잊은 채 물 밖 갈대줄기에서 몸 말리며 벅찬 자유의 아침 공기를 맘껏 호흡하던 난 정녕 행운아였던가요

 

  결코 어느 수족관에서도 사육될 수 없는 소중한 꿈 하나를 품에 끌어안은 채 연신 물거품이 솟구쳐 오르는 버블 어항의 한 모퉁이 죽음보다 깊은 겨울잠을 청하고 있는, 뭍과 바다 그 어느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튼튼한 영혼의 폐를 가진 난.

 

웹진 『시인광장』 2010년 11월호 발표

 

 


 

임동확 시인

1959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 전남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을 졸업. 서강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취득. 시집 『매장시편』을 펴내며 등단.  시집으로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운주사 가는 길』, 『벽을 문으로』, 『처음 사랑을 느꼈다』, 『나는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와 시화집 『내 애인은 왼손잡이』, 산문집 『들키고 싶은 비밀』, 시론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