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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 출가하는 새
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가 앉은 가지에 자기가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새는 자기가 앉은자리에 자기의 투영이 없다. 새가 날아간 공기 속에도 새의 동체가 통과한 기척이 없다 과거가 없는 탓일까 새는 냄새라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 몸으로 빈털터리로 빈 몸뚱아리 하나로 그러나 막강한 風速을 거슬러 갈 줄 안다 生後의 거센 바람 속으로 갈망하며 꿈꾸는 눈으로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본다
황지우 시인 / 화광동진(和光同塵)
이태리에서 돌아온 날, 이제 보는 것을 멀리 하자! 눈알에서 모기들이 날아다닌다. 비비니까는 폼페이 비극시인(悲劇詩人)의 집에 축 늘어져 있던 검은 개가 거실에 들어와 냄새를 맡더니마는, 베란다 쪽으로 나가버린다. TV도 재미없고 토요일에 대여섯 개씩 빌려오던 비디오도 재미없다. 나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건 자꾸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뜯긴 지붕으로 새어들어오는 빛띠에 떠 있는 먼지. 나는 그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황지우 시인 / 흔적도 없이 지나갈 것
아내가 말했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당신이 지독한 뜻을 알기나 해? " 쾌종 시계가 두 번을 쳤을 때 울리는 실내:그는 이 삶이 담긴 연약한 막을 또 느꼈다 2미터만 걸어가면 가스벨브가 있고 3미터만 걸어가면 15층 베란다가 있다
지나가기 전에 흔적을 지울 것 쾌종 시계가 들어가서 아직도 떨고 있는 거울 에 담긴 30여평의 삶 지나치게 고요한 거울 아내에게 말했었다:" 그래,내 삶이 내 맘대로 안 돼"
서가엔 마르크시즘과 관련된 책들이 절반도 넘게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석유 스토브 위 주전자는 김을 푹푹 내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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