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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희 시인 / 장마
내리는 저 비 쉽게 그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고통 없이는 당신을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 나는 압니다 버틸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가슴에 궂은 비 내리는 날은 함께 그 궂은 비에 젖어주는 일, 내 마음에 흐르는 냇물 하나 두었더니 궂은 비 그리로 흘러 바다로 갑니다
홍수희 시인 / 진달래
그땐 참, 내 마음이 저리 붉었습니다
당신이 지나치며 투욱, 떨어뜨린 불씨 하나가
내 영혼 가파른 벼랑 위로 잘도 활활 타들어 올랐습니다
타들어 오신 길 마저 닿을 듯
아슬한 그리움 문득 철렁이는 아픔 되어도
다시는 그 후 지나치며
투욱, 불씨 하나 떨어뜨려 주지 않으셔도
그땐 참, 이별도 사랑이라 저리 붉었습니다
그땐 참, 눈물도 꽃잎이라 저리 붉었습니다
홍수희 시인 / 친구
오랜 침묵을 건너고도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라는 이름 앞엔 도무지 세월이 흐르지 않아 세월이 부끄러워 제 얼굴을 붉히고 숨어 버리지
나이를 먹고도 제 나이 먹은 줄을 모른다네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 애정이 있으되 묶어 놓을 이유가 없네 사랑하되 질투할 이유도 없네
다만 바라거니 어디에서건 너의 삶에 충실하기를 마음 허전할 때에 벗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신은 우리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셨네 우정의 나뭇가지에 깃든 날갯짓 아름다운 새를 주셨네
홍수희 시인 / 코스모스가 있는 풍경
길이 너를 위하여 있는 것인지 네가 길을 위하여 있는 것인지
하릴없이 기다리다 후여후여 부질없는 허수아비 춤이나 배워 버린 너,
칠 벗겨진 붉은 자전거 하나 휘영청 휘어진 네 허리께에서 곤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
아무도 너의 눈짓을 기억하는 이 없고 버스 정류장 땅거미 쓸쓸히 밀려오는데
부드러운 달빛 마침내 네 창백한 꽃잎에 와서 묻으면,
금세 너는 눈물이 되어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 같은
홍수희 시인 /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산다 너에게 짧은 안부 묻고 싶어 전화했더니 지금은 안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짧은 안부 묻고 싶은 너에게서 전화 받은 날 나도 지금은 바쁘다고 했다 지나고 보면 왜 그리 바쁜 날이 많았는지 정작 나의 마음이 보이지 않도록 왼손에게는 늘 오른손이 바쁘다고 했다 오른손에게는 늘 왼손이 바쁘다고만 했다 정작 나의 마음이 보이지 않거나 너의 마음이 보이지 않기를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산다 스스로 그렇게 바쁘다, 바쁘다, 되도록 이면 마음이 보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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