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육 시인 / 심청전 비틀어 읽기
수세기 동안 많은 왜곡과 숱한 위증들이 계속되었으나 효녀라는 장옷을 덮씌워 잡단 살해하였음이 밝혀졌다
열다섯 살, 봄꽃같은 소녀가 있었네 눈은 샛별보다 초롱하고 입술은 동백보다 붉었네 치아는 희고 투명하여 백설 같았네 너무 아름다워 바람마저 그녀를 탐내었네 너무 고와 해와 달마저 그녀를 가지려 했네 물고기는 헤엄치는 것을 잊고 바닥으로 가라앉았고 하늘을 나는 새는 날갯짓을 잊고 땅으로 떨어졌네 청아, 청아, 내 딸 청아! 알마비바 백작은 오늘도 꽃 같은 수잔나가 욕심이 났네 맑고 아름다운 우리의 청이는 봄봄 열다섯 영주는 탐욕스러웠고 승녀는 음험했네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누리는 자는 더 많이 누리려 했네 심봉사는 까맣게 눈이 멀었고 힘센 그들은 탐욕으로 눈이 멀었네 그래서 피가로는 날마다 고민이었네 삼백 석 공양미는 깊고 깊은 수렁이었네 백작이 자꾸 수잔나를 유혹하네 승녀가 자꾸 심봉사를 유혹하네 용왕이 자꾸 청이를 유혹하네 오오 탐욕의 알마비바여! 간특한 시대의 이데올로기여! 결국 열다섯 살 소녀는 살해되었네 그녀의 주검에는 효녀 마크의 차도르가 덮씌워졌네 집단 이데올로기는 그녀의 죽음을 자랑하네 자랑하며 짓밟네 열다섯 연분홍 꽃잎 처녀막이 바르르 떨고 있네 도와줘요 솔로몬, 번쩍이는 지혜가 피가로에게 필요해요 동백꽃보다 붉은 수잔나의 처녀성을 지켜야 해요 임당수의 어린 숫처녀를 구해야 해요 둥둥 바다연꽃 속 죽은 청이가 관음으로 피어나네 휘영청 달마저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고 세상의 꽃들도 무안하여 잎으로 제 모습을 가리네 이런, 시베리아 된장! 처녀막을 터뜨린 티벳의 승려가 돈까지 달라고 하네 에이, 신발끈! 초야권 마구 쑤셔대던 영주가 헉헉헉 낄낄낄 지껄이네 이보게, 처녀막은 위험한 것이네 그곳의 붉은 핏방울이 자네에게 재앙을 가져올 거야 신의 이름으로 힘센 우리가 파화(破禍)를 해야 해! 그건 신성한 우리들의 의무지! 애송이 피가로야 알겠니? 어이, 멍청한 까막눈 영감, 당신도 알아들었지?
웹진 『시인광장』 2011년 2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강연호 시인 / 선인장 외 4편 (0) | 2020.06.27 |
|---|---|
| 박수현 시인 / 외인부대 (0) | 2020.06.26 |
| 노준옥 시인 / 눈보라 소야곡 (0) | 2020.06.26 |
| 하린 시인 / 거울의 근성 (0) | 2020.06.26 |
| 김경수 시인 / 노란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보도(步道) (0) | 2020.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