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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시인 / 외인부대
나는 다섯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존 베이커, 미셀 블랑쉬, 마호메드 살람, 차오 그리고 기억도 아물거리는 이름 하나 하지만 이 세계 어느 관공서에도 그 이름들은 등재되어 있지 않다네 그 때문에 흰 달빛을 살비듬처럼 뿌려대는 만월을 바라보며 국경의 사막 한 귀퉁이에서 눈시울을 적신 적도 있다네 눈보라치는 톰스크 설원, 싸늘한 침낭 속에서 이명처럼 달팽이관까지 스산하게 파고드는 바람소리를 안주 삼아 밤새 독한 압솔루트 보드카를 병째 들이킨 적도 있지 참, 파도가 검은 늑대처럼 길길이 뛰는 어느 해변에선 한 번도 정조준해보지 못한 내 삶이 저처럼 부서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떨었지
나는 그토록 많은 나의 이름이 무서웠다네 눈을 감으면 환등기의 슬라이드처럼 켜졌다 사라지는 전투의 장면들 조명탄의 섬광이 번쩍이고 박격포의 폭음과 LMG의 연속 발사음이 벌겋게 귓전을 때리지 그때마다 습기를 품은 편서풍처럼 쓸쓸히 한 정부가 세워지고 새로운 국경의 지도가 그려졌지 때때로 나는 해적방송의 주파수를 끌어 올려 행복지수와 전쟁의 상관관계를 계측해보고 싶다네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는 그곳에다 차례로 파묻은 내 이름들을 새삼 발굴해내고 싶다는 말은 아니네 그저 찢긴 레지옹 에뜨랑제* 깃발과 진흙창에 나뒹굴던 캐피 블랑**그리고 함께 견뎌내던 전우들이 사막의 유령처럼 서성대는 기억의 진원지, 그곳에 수시로 피납된 헬기처럼 곤두박질치는 내 외로움이 불시착하는 것이 유감일 뿐인게지 오래전 빠른 기류에 쓸려가버린 임시 정부의 구호들이 자꾸 귀에 쟁쟁대고 날마다 은폐된 어둠 속에서 내 뒤통수를 향해 30구경 아니 어쩌면 45구경 라이플 총구을 겨누고 있을 저격수의 냉정한 눈빛이 그저 성가실 따름이지
*레지옹 에뜨랑제:외인부대 휘장 **캐피 블랑: 160년 전통의 외인부대원의 하얀 모자
웹진 『시인광장』 2011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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