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석진 시인 / 시월
여름 내내 잠복해 있던 그리움을 앓는 거겠지 고열로 단풍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물처럼 아픈 잎새 뚝뚝 떨어지는데 어쩔거야 나 하나쯤 잠시 자리를 비운들
사는 게 급급하여 이까짓 변화쯤 몸 사려 참지를 못하고 숨막히게 난방을 해대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낭만은 을씨년스러운 찬바람에 혼절하였다
붙잡지 마라 마침내 나는 떠나리 집요하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빗발치는 아우성을 은행나무 밑 벤치에 앉혀 놓고 침묵으로 까맣게 채색하는 단호한 망각의 시월
공석진 시인 / 여성봉
"어머!" 부끄럼 반 난처함 반 "이야!" 신기함 반 호기심 반 애써 욕정 웃음 뒤에 감추고 한 놈도 예외 없이 뚫어져라 한곳만 바라보는 뭇남정네들 "성가시게 왜 거기 박혀서..." 주목받지 못하여 사뭇 쓸쓸한 나무가 쓰러진다
공석진 시인 / 오르지 않는 산
너무 높아서 혹은 너무 가파라서 오르지 못하는 산 인적 없는 그 산에 한 남자가 올랐답니다
세상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도 마음 흔드는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 산이 있다면 그야말로 고독하기 짝이 없는 일
우리는 누구나 험산 같이 외로운 존재라해도 일생을 문 걸어 잠근 산으로 사는 건 참으로 몹쓸 짓입니다
지금 저는 사람이 살지 않던 산에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풍경을 먼발치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공석진 시인 / 오봉
뭉근하게 끓던 사랑이 느슨해진 지각을 뚫고 세상 밖으로 치솟았다
우이령 넘나드는 여인 기세 눌려 외면하려니 순정을 치한 색정이라 오명뒤집어 쓴 서운함 뜨신 눈물로 쏟아지고
봄 곁눈질하는 길목은 하루 종일 질퍽거렸다
공석진 시인 / 오봉이 여성봉을 탐하다
양기와 음기 조화로다 낙엽옷을 입은 여성의 해진 올 가을 바람이 조금씩 당겨 하반신을 드러내누나 건장한 놈 다섯이 주위를 살피다가 서로 먼저 차지하려 풀어 헤친 낙엽 위를 헤집어 양지 바른 곳 자리를 펴다 나신이 눈 부셔 꼼짝 못하고 굳어 버렸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지향 시인 / 가벼운 너무나 가벼운 외 5편 (0) | 2020.06.27 |
|---|---|
| 나해철 시인 / 동해일기·3 외 4편 (0) | 2020.06.27 |
| 강연호 시인 / 선인장 외 4편 (0) | 2020.06.27 |
| 박수현 시인 / 외인부대 (0) | 2020.06.26 |
| 김인육 시인 / 심청전 비틀어 읽기 (0) | 2020.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