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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철 시인 / 동해일기·3
바다에 서면 이제는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들이 생각난다 부서진 유리창처럼 상처의 숲을 이룬 가슴이 구석구석 따뜻해지면 평화로워진다
나해철 시인 / 두엄자리
두엄은 썩어서 금비가 되는데 지푸라기, 돼지똥, 닭똥 그리고 오줌이 섞여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비료가 되는데 벼가 먹고 보리가 마셔서 살이 통통 오르는 영양식이 되는데 헛헛한 내 가슴은 썩어도 어디 붙일 데 없다 가슴을 두엄자리에 내려 독새풀, 엉겅퀴, 억새, 물풀들과 포개져서 다 탄 재와 똥오줌에 달구어져 질 좋은 퇴비가 되면 좋겠는데 땅 위에 떠서 흔들리는 저 가벼운 내 가슴 누구를 만나 껴안아도 안기는 건 저같이 무게도 없는 빈 뼈의 집
나해철 시인 / 별
한겨울 마른 나뭇가지 끝에도 주먹만큼 별들은 매달려 외로워 외로워 말라고 파랗게 빛나는데 아직은 심장에 따뜻한 피 흐르는 내 가슴과 어깨 위에 어찌 별들이 맺혀 빛나지 않겠는가 사람들아 나를 볼 때도 겨울 나무를 만날 때도 큰 눈에 어린 눈물보다 더 큰 별이 거기 먼저 글썽이고 있음을 보라
나해철 시인 / 봄날과 시
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시가 씌어지기나 하나 목련이 마당가에서 우윳빛 육체를 다 펼쳐보이고 개나리가 담 위에서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리고 진달래가 언덕마다 썼으나 못 부친 편지처럼 피어있는데 시가 라일락 곁에서 햇빛에 섞이어 눈부신데 종이 위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씌어진 게 시이기는 하나 뭐
나해철 시인 / 불
불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따스하게 찬 것들을 덥히고 온전히 재가 되는 것을 보면 역사의 꽃밭마다 몸을 던져 죽어서도 온기로 남아 있는 그대들이 생각난다.
우리는 불 주위의 새벽에 침묵으로 앉았다. 우리는 덥혀졌으며 추운 거리와, 거리의 방패, 구둣발을 잊었다. 가장자리와 가운데 어디서나 불은 타오르고 하늘의 흐린 별까지 닿아 올랐다. 눈시울에 몇 장의 낙엽처럼 떠오르는 지난 새벽과 정오, 황혼의 이 땅, 절망과 증오, 답답함과 비애에 대해서 오래 말들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불과 불의 순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생은 귀하고 이 흙 위의 우리들 삶에 눈물겨운 것들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알았다. 불 속에 한줌의 슬픔을, 누구는 한움큼 마른 뼈를 넣고 또 던지며 우리는 기다렸다. 새벽 불의 완성을, 우리들 기도의 간절한 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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