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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재분 시인 / 초파리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7.

정재분 시인 / 초파리

 

 

유선형의 날쌘 움직임이

나타났다가 순간 사라진다

적의에 찬 양손바닥이 맞부딪칠 새도 없이

오간데 없으니 착시였나

강원도 산골에 첫얼음이 얼었다 하고

보일러를 켜둔 지 한참 됐다

피도 없는 것이니

눈물도 없을 것이 그래도

추위를 타는지 덥혀놓은 공간을 무단 점유한다

향긋한 과일 냄새와

시간에 절인 밥상머리 장아찌와

힌놈의 골짜기* 같은 쓰레기통과

물때라든가 냄새 따위가 배어있는

개수대 언저리를 맴도는

먼지 두 개만한 불온의 날개는

냄새만 맡고도 거뜬히 하루를 살고

김칫국물이라도 핥았다하면 일평생을 살까

부양 없이도 저절로 사는 두서없는 욕망

낙석이 된 유성이 말러의 “천인 교향곡”을 들으며

제 있던 곳을 가늠하는 동안

생각의 각질이 해프닝 같이

우주의 주근깨 같이

온몸이 콧구멍이고

온몸이 날개인 아바타가

빈틈에서 태어나 빈틈을 엿보며

썩어가는 두엄자리에서 목숨을 복제하는

검은 의지로 빛나는 저 것!

 

웹진 『시인광장』 2011년 2월호 발표

 

 


 

정재분 시인

2005년 《시안》을 통해 《사나사》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그대를 듣는다』(종려나무, 2009) 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