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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철 시인 / 고은 담론: 아는 척해온 자의 일생 ㅡ서산대사의 유언게에 대하여
1
1998년 어느 날, 『중앙일보』의 「시(詩)가 있는 아침」이란 칼럼,
고은이란 '지은이'[作者/術者]; 서산대사의 유언게를 해석하여 (자칭 그의 '제자'라는)
황지우 식으로 일갈해대기를: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80년 전 옛적에는 네가 나였고 80년 후 오늘에는 내가 너로다'
하지만 정작, 애석하게도, 서산대사의 유언게의 올바른 해석은:
"80년 전에는 그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그로구나!"
일 뿐이었던 것을!
이는, (물어라!) 요는, (모르면 묻는 법!)
아무리, 제아무리, 의역을 해본다손 치더라도,
3인칭 대명사 '그'일 뿐인 '渠'가, 2인칭 대명사인 '너'로 둔갑을 해버릴 수는 도저히 없었다는
얘기인 셈일 뿐이라는 것!
2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ㅡ고은, 「그 꽃」 전문.
《보유》
[시가 있는 아침] 서산대사 임종시 [중앙일보] 입력 1998년 4월 25일
80년 전 옛적에는 네가 나였고 80년 후 오늘에는 내가 너로다
ㅡ서산대사 임종시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 ∼ 1604)는 여섯 살 때 모래로 탑을 쌓고 돌멩이로 절을 지었다 한다. 열 살에 부모를 잃었다 한다. 그 어린 고아가 시를 줄줄 지었다 한다. 한양으로 가서 사서삼경을 공부했다. 그러나 벼슬길을 버리고 산길을 갔다. 당대의 출격장부(出格丈夫)였다. 임진왜란에는 나라를 구했다. 나이 85세의 임종에도 실로 확 트인 시가 나왔다. 제자 사명과 처영이 곁에 있었다. 도무지 늙을 줄 모르는 정신의 청춘이 여기 있다.
ㅡ고은(시인)
[인용자 / 시인, 박남철 주]: 서산대사의 임종게('임종시')는 이와는 또 다른 게송이 있다. 그래서 나는 특별히 영정 뒤에 적었다는 이 게를 '유언게'라고 명명을 한 것이다. 서산대사가 임종을 할 때에는 그 곁에 사명과 처영은 있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특별히 서산대사가 손수 영정 뒤에다 적은 영찬인ㅡ사명과 처영에게 각각 남긴 유언들과 함께ㅡ이 게를 '유언게'라고 명명을 하게 된 것이다. '고은'이란 '지은이', 즉 '환속 승려'는 소설을 참으로 잘 쓰는 '작자'라는 것이다. 글쎄, 그리하여 『한용운 평전』도 다 소설이요, 『화엄경』도 소설이요, 『만인보』까지도 다 소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안타깝게도, 이 소설들은 그 모두가 다 단일의 화자들일 뿐인, '고은' 1인의 목소리들만 등장하는 『화엄경』이요, '고은' 1인의 목소리들만이 등장하는 『만인보』라는 것이다. 과히 길고도 긴 마스터베이션masturbation의 경전이요, 마스터베이터masturbator의 세월의 족보라 아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2010.12.17.]
《참고 문헌》 김 현, "고은의 『만인보 1, 2, 3』(창비, 1986)은 [~] 자꾸 야담집 같아 보인다. 애석하다", 「1986. 12. 6.」, 『행복한 책 읽기』(문학과지성사, 1992), 제56면.
박남철, "서산대사의 '유언게'와도 자못 유사한 바가 있으며", 「정리 I」, 『제1분』(문학수첩, 2009), 제101면.ㅡ, "만보기 차고 다니며 가끔씩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는", 「석승 II」, 『제3분』(피디공책, 2010), 제18면.
웹진 『시인광장』 2011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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