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구연배 시인 / 청음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8.

구연배 시인 / 청음

 

 

지렁이 울음소리 듣느라

밤잠을 놓친

새벽 이브자리

 

앞산이 밝아온다.

 

 


 

 

구연배 시인 / 풍장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라지느냐를 생각한다.

 

바람을 읽고

바람과 싸우다

바람에 눕는 가벼움이라니,

 

마지막 숨을 찍는

낙엽의 투신이 긍휼하다.

 

나무처럼

내가나를 풍장하고 싶다.

 

 


 

 

구연배 시인 / 하늘수박 꽃

 

 

치정이라 욕하지 마라

그대를 칭칭 감고도 모자라

뿌리까지 감아버린 실팍한 인연이다

 

욕정이라 비웃지 마라

그대가 죽으면 나도 따라죽는

목숨건 사랑이다

 

삶이란

허공에 매달려서까지 키워내야 할

목숨 값이 있고

죽음으로도 바꾸지 못할

넝쿨 사랑법이라는 게 있다

 

한 몸 이룰지니

극진한 사랑을 꿈꾸거든

절정의 순간 눈감지 마라

죽을지라도 감은 손 풀지 마라

 

나무 허리를 마음껏 죄는

하늘수박 꽃

한여를 폭염이 먼저 지치는

목하 열애 중이다

 

 


 

 

구연배 시인 / 해오라기

 

 

중심을 꿰뚫어

생각나무 한 그루 심어놓을 듯

바위에 앉아

혼신의 힘을 쏟아 붓는 해오라기

 

강물이 잠시 굽이칠 때

미동도 않던 눈꺼풀이 깜빡

닫혔다 열린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물고기 한 마리

그림자 질 틈도 없이

쏜살처럼 달아나고

 

날개를 폈다 접는 해오라기

깊고 쓸쓸한 숨소리가

강물 위에 멎는다

 

 


 

 

구연배 시인 / 훈계

 

 

가볍게 드나들 것.

 

소박하지만 난 늘 실패다.

집으로 돌아올 땐 주머니 가득

구겨진 지폐와

온기 없이 나눈 차가운 악수

그리고 한 없이 얇은 희망 부스러기들뿐

깔끔하게 오늘 하루와 결별하는 데 실패했다.

주머니가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

종잇장처럼 가볍게 나를 내려놓고 싶다.

더 크고 넓고 높은 것을 쫒아

정신 없이 세상을 구겨 넣는 자신과

몇 번이나 마주했던가.

이젠 염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겨우 한다는 짓이

구석진 방에 퍼질러앉아

구겨진 지폐를 다려 통장에 담고

서늘해진 손등을 비벼 온기를 충전하고

은총에 눈감아 버리고 희희낙락!

목숨치고는 실로 가소롭고 가련하다.

 

 


 

구연배 시인

전북 진안출생 *1995년 전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1995년 자유문학 시 추천 완료. <자유문학> 신인상(시) 수상. 시집 <빗방울은 깨져야 바다가 된다> <물의 간극> <몽리몽외(夢里夢外)> <환한 꽃그늘> <사계 그리고 환절기>. 현재 서해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