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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필균 시인 / 어느 시인의 사랑
사랑을 위해 기꺼이 술이 되겠다는 그는
그가 마셔버린 술 속에 술이 되어 시를 술로 발효시킨다고.
사랑을 위해 기꺼이 눈물이 되겠다는 그는
그가 흘려버린 눈물 속에 눈물이 되어 시에 눈물을 섞는다고.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몰락해 주겠다는 그는
그가 택해버린 몰락 속에 고통이 되어 시에 고통을 남긴다고.
목필균 시인 / 엄마와 어머니 사이
스물네 살 딸 시집보내고 친정어머니 되고 서른세 살 아들 장가보내고 시어머니 되었다
엄마와 어머니 사이 비탈진 품안으로 조금은 멀게 자리 잡은 자식들
진액 모두 빠져나간 텅 빈 거실에서 리모컨으로 들려오는 세상이야기
어머니 시절보다 엄마 시절이 더 힘이 있고
엄마 시절보다 어머니 시절이 더 둥글더라고
목필균 시인 / 오월 어느 날
산다는 것이 어디 맘만 같으랴
바람에 흩어졌던 그리움 산딸나무 꽃처럼 하얗게 내려앉았는데
오월 익어 가는 어디 쯤 너와 함께 했던 날들 책갈피에 접혀져 있겠지
만나도 할 말이야 없겠지만 바라만 보아도 좋을 것 같은 네 이름 석자 햇살처럼 눈부신 날이다
목필균 시인 / 우리가 가는 길
손 흔들지 않아도 흘러가더라
불끈 힘 주며 솟아나는 새순도 환하게 불 밝히는 꽃들도 시퍼렇게 그늘지는 여름도 몇 순배 돌아도 취하지 않는 생생한 목숨들인데
그 눈물 다 모르는 척 무심히 흘러만 가더라
새벽 열리는 강가에 서면 안개 속 내가 숨겨지고 우연히 마주치던 우리 그렇게 숨겨지고
쌓여진 연륜이 덜그럭거리며 쫓아온 이즈음까지 아득히 잊혀졌던 묵은 정 품고 기약 없는 길 다시 또 가더라
목필균 시인 / 잔인한 봄
삼월 끝자락까지 눈발이 분분하더니 늦은 꽃바람 흐드러지더라
베란다 창으로 굴절된 햇살 거실 깊숙이 들어서고 손바닥만한 화분에 사랑초도 늘어져 하품하는 오후
삼년 째 방안에서 벽을 쌓는 방울이 아범 빈주머니에 핀 백수곰팡이 잔술 얻어먹는 일도 시들어진지 오래 오래 오래다
빌어먹을 꽃은 무슨 빌어먹을 꽃은 무슨
늦은 꽃바람보다 일어서서 휘돌아다니며 밥벌이 할 곳이 더 급한데 몸은 늘어져 거실을 뒹군다
명자꽃 으스러지게 피어도 꽃타령은 무슨 꽃타령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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