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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필균 시인 /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움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묻게 한다
물음표를 붙이며 안부를 묻는 말 메아리 없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어둠 속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전하게 한다
온점을 찍으며 안부를 전하는 말 주소 없는 사랑이다
안부가 궁금한 것인지 안부를 전하고 싶은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묻고 싶다가
잘 지내고 있어요 전하고 싶다
목필균 시인 / 장마
굵은 비가 내린다. 언제 그칠 줄 모르는 장맛비가 지하방(地下房) 창가에 흐른다.
그렇지 않아도 눅눅한 방에 칠순으로 향하는 마른 육신이 고단한 몸을 담고 있는데 비는 칭얼칭얼 치마꼬리를 잡는다.
온종일 고층아파트 계단 쓸어 내리던 무릎관절 오지게 부어오르는 밤을 살만한 자식들 손길 마다하고 홀로 지켜내는 유씨 할머니.
낮에도 어두운 그 곳을 햇볕 속에서도 축축한 그곳을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
목필균 시인 / 참스승
꽃 이름만 배우지 마라
꽃 그림자만 뒤쫓지 마라
꽃이 부르는 나비의 긴 입술
꽃의 갈래를 열어 천지(天地)를 분별하라
몸으로 보여주는 이
목필균 시인 / 채송화 꽃 그녀
애끓는 사랑은 단칸방 신접살이도 달콤했었지만
살다보면 사랑은 세월에 무디어지고 애증으로 엉킨 정도 세월만큼 익어갔는데
노랑꽃 속에 빨간 꽃 속에 키 낮은 잎새 속에 여문 까만 씨앗이 눈물겹도록 작은데
어느 날 문득 폐암말기라는 지아비 사십도 못되어 떠나간다는데 모두들 흘러갈 그 길로 떠나간다는데
먼지같이 작은 씨알이 흩어져 흔적도 없이 그렇게 미운 정까지 털어 내며
헤어짐도 아름답게 미소로 보내야 하는데
아깝다아깝다아깝다 엎드려 속울음 삼키는 그녀는 어찌할까
목필균 시인 / 코스모스
내 여린 부끄러움 색색으로 물들이고 온종일 길가에서 서성이는 마음 오직 그대를 향한 것이라면
그대는 밤길이라도 밟아 내게로 오실까
목필균 시인 / 홍시
눈 내리는 날 눈을 맞고 있는 홍시가 있다
리어카 과일 아저씨 무딘 발걸음 다라에 담긴 홍시들이 눈 맞으며 동네를 돈다
겉도 속도 붉은 홍시를 만나면 겉도 속도 따뜻했던 시어머니 팔순의 합죽한 입이 생각난다
치아 부실한 시어머니께 말랑말랑한 홍시를 드리면 “맛나다. 참, 맛나다,” 잡수시던 쭈글쭈글한 입술
해마다 이즈음 큼직한 홍시를 만나면 이십 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 합죽한 미소가 생각난다
눈 내리는 날 저 홍시는 어느 집에 머물다가 부드럽고 달콤한 과육으로 치아 없는 노모를 미소 짓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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