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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민구 시인 / 벌레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7.

민구 시인 / 벌레

 

 

  그는 하던 얘기를 멈추었다

  그러자 일차선 도로로 달려오던

  목구멍 속의 말들이 서로 충돌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몸 안에서는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만치 뒤따라오던 것들은

  불을 켜고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열린 구멍을 찾아서 전력으로 질주했다

  그는 항문이 몹시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말이 주행속도를 어기고 달려오는 바람에

  두 눈은 레이저를 발사할 듯 이글거렸고

  인중 가량에서 유턴한 분노가 콧구멍으로

  빠져나가려고 해서 얼굴은 달아올랐다

  적당한 경로를 찾지 못한 말은

  밖에서 걸어 잠근 턱을 열어보려다가

  서서히 침묵으로 굳어갔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주검들 사이에서

  의미를 찾으려 혓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 사이 침묵은 고깃덩어리처럼

  부패하여 식도로 떠내려갔다

  마침내 그가 말문을 열었을 땐

  악취와 함께 벌레가 기어 나왔다

  남자의 목구멍에 붙은 유충들도

  허물을 벗으려 들썩거렸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6월호 발표

 

 


 

민구(1983~) 시인

1983년 인천에서 출생. 2009년 《조선일보》 신문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中. 2014년 첫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