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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지우 시인 / 개구리의 냉암소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9.

정지우 시인 / 개구리의 냉암소

 

 

숨죽인 발소리에 개구리 울음이 멈췄다.

개구리의 생몰연대에 들어갈 수 없는 굴절된 정적

 

외길이 어깻죽지를 늘어뜨리며 사라진 해거름

수축하는 공기가 창에 번지면 창은 그림자의 등불

멈추기 직전의 숨결도 수심이 있어 몸에 허공이 생기고

울음주머니는 돌아오지 못한 너머, 그 너머를 대신한 말

 

물은 물로 어둠을 일별하지만 발을 숨긴 담장과 나무들

신호등 너머 인멸된 그림자를 바퀴가 뭉개도 흔드는 손

 

흐린 창에 붐비는 빌딩과 자동차와

버스를 지나며 부고 문자를 들여다보는데 꼬리가 사라졌어요.

몸에서 나머지 발을 꺼냈지만

발은 꽃의 형상으로 적벽에 새기기 전에 닫혀요.

 

영원을 부르는 순간 영원에 갇혀

남은 자로 남겨진 연대기는

지면 밖으로 물방울을 떨어트리지요. 물이 물로 어른거리는 방

수장된 수심은 가슴을 열고 꺼내요.

 

흘러가기 위해선 멈춘 숨을 돌보는 것

정수리에 허공의 바닥이 닿고 축축한 비명이 한 마리 두 마리

아스팔트 위로 뛰어드는 불빛들

차가운 별에게 한걸음 다가가면

그의 시가 뜨겁게 핏속을 돌아 전신에 퍼져요.

 

빛에 의해 깨진 빛을 모으다 사라진 빛

시를 쓰다가 도착한 모르는 곳은 남겨진 슬픔

 

심장은 지상의 흔적처럼 밤하늘에 떠 있고

길을 잃고 헤매는 문장에 촛불을 켰어요.

 

계간 『시와 문화』 2019년 봄호 발표

 

 


 

 

정지우 시인 / 계류

 

 

정면은 돌아와 있다. 물의 이면 같은 물빛에 달 속은 어떤 표출처럼 깊게 파인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안색이 삐져나온 속살처럼 움직임의 틈에 걸렸다.

 

쇼윈도 마네킹이 매번 앞이 되는 순간이 오고 옷을 고르듯 결정해야 한다. 눈을 보고 말해. 그렇더라도 선택을 벗어나는 마네킹

 

죽으려고 환장했어. 승용차가 스쳐갔다. 어떤 꼬리를 본 거 같은데 꼬리에 꼬리를 밟으며 앞을 놓치지 않았는데...

 

밟은 건 모두 떠오르는 수면에 잠겨있다.

 

실크감촉처럼 나를 흘러갔던 무늬가 파뿌리를 다듬던 노인의 손끝에 걸쳐있고, 마지막 말을 뱉는 친구의 입술에 묻어있다는 감촉,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벗었던 허물을 다시 입는 일이 속출하는 일기장

 

마네킹 목을 뽑을 때 내 목을 만지면

텅 빈 물음처럼 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처럼 거울이 도래했다.

 

길어진 목으로 두리번거리면 위아래로 갈라지는 새의 시간을 따라

가로등 불빛들 어둠을 품고 날갯짓한다.

 

흘러내리는 건, 바닥을 모은 물의 면이다.

 

계간 『시와 세계』 2019년 겨울호 발표

 

 


 

 

정지우 시인 / 둔주곡

 

 

불이 활활 타오르고 물이 불어나는데

서로의 물속과 불속을 뛰쳐나오며

물에 휩쓸리지 않는, 불에 타지 않는 입술로 악기처럼 물과 불을 모방한다

 

항아리에 물을 붓고 우리는 우리의 물소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흘러넘치지 않을 만큼

비어가지 않을 만큼

물줄기, 타다 남은 지느러미에서 수심은 자라난다

 

목이 마르는 물의 구석에 몰리는 일이 자주 찾아왔다

물결을 흘러가다보면 거기, 깨지면서 깨어나는 불의 흐느낌

 

타닥타닥,

 

어떤 불구의 형태는 소리에 갇히고 만다

기척과 같은 현관과 거실과 부엌의 이음새

내려앉은 서까래는 벌컥벌컥 물을 마신 적 있는 한낮

점점 발화되는 출구는 수화를 하는 손가락처럼 구부러지는 물그림자

 

바람을 타고 있다

제 집에 불을 지르며 태우는 바람이 있다

어떤 물건이든 두드려보면 존재하는 폐허가 있다

재로 그을음으로 연기로 빠져나가는 집안의 매듭

 

물을 생성해내며 물방울로 나를 떨어뜨리며 다닌다

물에 비친 공간을 얼굴로 재현하듯 분노는 일어났고, 물방울 속에서 불꽃은 소멸하면서 완성된다

 

덫칠한 색과 모양이 비틀어진 세상의 이야기

움직이는 불과 물속에서 구출해낸다

 

계간 『시인수첩』 2019년 겨울호 발표

 

 


 

정지우(鄭誌友) 시인

전남 구례에서 출생.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민음사, 2018)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