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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미산 시인 / 오래된 골목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12.

이미산 시인 / 오래된 골목

 

 

  사탕을 주세요

 

  상보에 덮인 찌개가 풀어지는 동안

  어느 행성에서 떨어진 이상한 돌덩이 같은 아기를 업은

  아내들 문간을 서성이는 동안

 

  좁고 구불구불한 바람은

  별이 쏟아지는 방향으로 몰려가고

  손이 닿지 않는 곳마다 맛없는 사탕처럼 그렁그렁한

  눈알들

  아버지, 사탕을 주세요

 

  나는 눈알이 태어나는 모든 입구와 출구를 지웠다

  죽은 아버지처럼 서 있는 수많은 가로등을 지나왔다

 

  이제 벗어난 걸까

  상보에 덮인 밥이 무덤이 되는 동안

  어느 별의 이마를 짚으며 바람 한 줄기 태어난다

  달이 만삭의 배를 열어 눈동자에 고인 울음을 비운다

  이어폰을 낀 아이들 이국적 인사처럼 랩을 노래한다

 

  어스름이 지붕을 타고 흘러내리는 동안

  아기 엉덩이 같은 아침 햇살이 태어나는 동안

  어느 행성의 심장소리를 내며 낡은 자전거가 지나간다

  바퀴살에서 사탕 부스러기 같은 빛이 연신 쏟아진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7월호 발표

 

 


 

이미산 시인

1959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中. 2006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한국문연, 2010)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