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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란 시인 / 종이남자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무색 무미의 종이남자를 접는다
세상을 향해, 어느 여자를 향해 허우적이던 팔과 무던히 뛰고 달리던 다리와 펄떡이는 뜨거운 심장 들키지 않게
종이비행기가 아니어도 던지면 어딘가 가볍게 톡 떨어질 수 있도록 내뱉지 못하던 말과 울음이 마음껏 새어나오도록 구겨진 생, 지나던 바람마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활활 불지를 생각은 없다 주름살처럼 쪼글쪼글해진 그 남자 잘 펴서 애잔함 몇 자 적어 물 위에 가만히 띄워보고 고뇌로 가득 찬 얼굴 가려지도록 모자도 접어 씌워주고 싶다
우연히, 잠시 만나 아무도 모르게 꼬깃꼬깃 손안에 감췄다가 하늘로 날려 보냈다가 외로울 땐 천천히 다시 펴보던 종이남자를 고서(古書)의 중간 페이지 즈음에 슬며시 끼워두고 싶다
웹진 『시인광장』 2011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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