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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혜은 시인 / 실업의 조건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3.

조혜은 시인 / 실업의 조건

-경비 아저씨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경비 아저씨는 주차장 컨테이너 박스에 살아. 선물 들어온 화분을 치우지 않았다고 아들 같은 가구공장 사장에게 혼쭐이 날 땐 출근과 같은 퇴근을. 네 할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는 동안 죽은 나의 아버지는 입으로 생리를 하며 여자가 되어 갔지. 나도 여자가 되려나보다. 아빠, 여기에선 철갑상어의 옷을 입은 모기가 영하 6도에서도 피를 빠는군요. 겨울에 빨리니 더 기분 나빠요. 지구 온난화를 기다리던 아저씨는 첫째딸이 잘 지내고 있는지 종종 확인했다지

 

  두 번째 이야기

 

  경비 아저씨는 발이 땅에 닿는 오토바이 위에 살아. 어제 만난 동료가 극적인 총기분실로 눈물을 쏙 뺄 때에는, 아저씨가 먼저 총알과도 같은 변명과 퇴근을. 젊어서는 두 개의 바퀴만으로도 세상을 구르기 충분했다만 나이 들고 커지는 건 두 개의 가슴뿐이구나. 나도 여자가 되려나보다. 아빠, 여기에선 가는 빗줄기조차 동공을 때리며 시력을 흐리는군요. 지붕보다 못한 아버지라니, 더 슬퍼요. 세계 평화가 꿈인 아저씨는 자신의 둘째딸이 같은 꿈을 꾸는지 항상 확인했다지

 

  세 번째 이야기

 

  경비 아저씨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 위에 살아. 20년 할부의 근근한 결혼생활이 끝나려 할 때까지, 한 사람을 위해 출근도 없는 퇴근을. 너는 엄마를 염탐하기 가장 적당한 거리에 있다. 너를 닮아가며 이제 나도 여자가 되려나보다. 하지만 아빠, 저는 없어요. 15년 전 엄마는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던 거겠죠. 해답도 없는 수수께끼에서 내 이름을 들키다니 속이 상해요. 탐정놀이를 즐기던 아저씨는 아직도 막내딸을 찾아낼 수 있는지 확인하고 확인했다지

 

  세 가지 이야기

 

  하지만 경비 아저씨의 딸들은 오래 전 도깨비 집에서 달아났다지. 출근보다 빠른 퇴근을 마칠 때에는 아저씨에게도 각각의 변명을 늘어놓을 구백 구십 구개의 방이 필요했고. 집구석에 온통 여자들뿐이니 마음을 놓을 수가 있나. 아빠, 우리는 더 큰 집을 가질 거예요. 그곳에서 우리는 결코 마주치지 않아요. 매일 같이 하나의 심장으로만 뒹굴던 딸들은 도깨비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지. 소원을 들어주는 방망이로 집을 부수고

 

  어제는 시끄러운 손가락 하나 들키지 않았다지

 

  나머지 이야기

 

  경비 아저씨는 아직 발이 땅에 닿는 오토바이 위에 살아. 언젠가 아내와 딸들 모두를 싣고 안전하게 출근하고 퇴근하기 위해서지

 

웹진 『시인광장』 2011년 12월호 발표

 

 


 

조혜은 시인

1982년 서울에서 출생. 강남대학교 특수교육학과 졸업. 2008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