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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효경 시인 / 19살 소녀의 에로스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3.

구효경 시인 / 19살 소녀의 에로스

–발렌타인 러브레터

 

 

보름달의 체위를 배워요

우리는 황홀한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과 사랑

두 손을 잡고 *비취교 색깔을 믿으며

*언개송 향기를 맡으며 *기빙족의 시대로 돌아가요

나의 애액과 땀으로 그대를 흠뿍 적셔드리고 싶어요

매일 그대를 생각하며 달빛 비치는 한밤중에

자위를 해요

미흡하지만 온몸을 바치고 싶어요

달콤하고 따뜻한 그대 품안에서 초콜릿처럼

사르르 녹고 싶어요

그대 몸 한가운데의 막대사탕

 

주고받고 우리 관계가 빛이 날 수 있다면

은은하고 소중한 우리의 밀애

두 손을 맞잡고 어디에도 현존하지 않는 나라로 달아나요

마법으로 다가온 운명

그대를 위해서라면 요부라고 모함을 당해도 좋아요

포근한 살갗을 더듬으며 눈동자에 비친 날씨를 애무해요

검은 꽃을 틔우며 성스럽고 아름다운 천일야화를 써내려가요

얼핏 용납할 수 없는 거짓말 같아 보이는

고백들이 수런거려요

저는 잉크처럼 닳아지고 싶은 걸요

정열적으로 타오르는 장밋빛 연서들

은밀하고 농익은 침실 곁의 살롱에서

커튼을 치고 뜨거운 차를 나눠 마셔요

작은 정원을 만든 테라스에서 똑같은 반지를 끼워요

한창 시리웁던 열대야가 너덜너덜해지도록

그 멋진 이마에 키스를 하며 신사의 비밀을 전해 들어요

스킨답서스 화분에 물을 줘요

저는 그대를 위한 외발회전목마에 올라탄 숙녀

귓가에 입김을 불어줘요

작은 키를 그대의 어깨에 맞추기 위해 발꿈치를 들죠

높은 구두는 집에 두고 왔어요

어디로도 도망가지 못해요

그대 가슴에 파묻혀 날아가는 절정을 느끼고 싶어요

말없는 눈빛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어요

 

늦겨울의 비가 내려요.

 

*체위의 일종 * 이하 동일 *이하 동일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구효경 시인

1987년 전남 화순에서 출생. 전남과학대학 화훼원예과 중퇴. 2014년 제3회 웹진 《시인광장》 新人賞 公募에 〈쇼팽의 푸른 노트와 벙어리 가수의 서가〉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현재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