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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호 시인 / 광야에서 - 민수기
이브, 광야에서 40년 살다 가는 이야기 들려줄까 그러니까, 둘째 아담이 오기 전 천 사백 오십년 전 하늘들 바다들을 세어보자 모세, 미리암, 아론도 못 이룬 죽음의 행진곡 자르지 않은 당신 머리털처럼 여기까지 따라와 빙글빙글 돌지
이상국(理想國)을 찾아 약속 믿고 행진하는 구름을 타고 떠났지 거인국의 포도송이 탐스런 저 땅에 호세아처럼 들어가자 여리고성 오를 수 있다는 갈렙처럼 생각했고 날수를 세며 여리고성 돌고 돌아왔지
세상 같은 건 버릴 수 없던 이브여,
이브 떠나는 저 과수원 적시는 빗소리는 에스겔 골짜기의 빗방울에서 왔지 과실나무의 발밑과 수로에서 일어선 물뱀들을 몰고 이천 오백년 전 그 빗소리 귀에 오지
꼬임에 쉽게 걸려드는 잎사귀 같은 귀, 지난 밤 누군가 벗어놓은 한 켤레 붉은 구두 같은 귀 잎사귀가 반역을 꾀할 때 반복되는 역병같이 불쑥 찔린 날카로운 이성에 소스라친 이브여
앉고, 가고, 쉬고, 일어난 구름의 때가 시간이고 밤과 낮인 일상 구름이 머물다간 언덕에 진(陣)을 치고 가네스바네아의 열 명의 정탐꾼처럼 의심했지 보암직한 금 돼지 형상에 절했지 깜깜속에다 엄마처럼 방치한 주인이 광야생활 38년 나의 악행을 빙글빙글 심판했지
머리털을 파고드는 빗방울, 이 끝에서 저 허리로 우는 빗물 이브를 데려 간 빗방울이 되었지
저기 다가오며 부서지는 내 실루엣 그 나라를 다 걸어 온 이브의 바람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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