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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은호 시인 / 광야에서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6.

임은호 시인 / 광야에서

- 민수기

 

 

이브, 광야에서 40년 살다 가는 이야기 들려줄까

그러니까, 둘째 아담이 오기 전 천 사백 오십년 전

하늘들 바다들을 세어보자 모세, 미리암, 아론도 못 이룬 죽음의 행진곡

자르지 않은 당신 머리털처럼 여기까지 따라와 빙글빙글 돌지

 

이상국(理想國)을 찾아

약속 믿고 행진하는 구름을 타고 떠났지

거인국의 포도송이 탐스런 저 땅에 호세아처럼 들어가자

여리고성 오를 수 있다는 갈렙처럼 생각했고

날수를 세며 여리고성 돌고 돌아왔지

 

세상 같은 건 버릴 수 없던 이브여,

 

이브 떠나는 저 과수원 적시는 빗소리는

에스겔 골짜기의 빗방울에서 왔지

과실나무의 발밑과 수로에서 일어선 물뱀들을 몰고

이천 오백년 전 그 빗소리 귀에 오지

 

꼬임에 쉽게 걸려드는 잎사귀 같은 귀,

지난 밤 누군가 벗어놓은 한 켤레 붉은 구두 같은 귀

잎사귀가 반역을 꾀할 때 반복되는 역병같이

불쑥 찔린 날카로운 이성에 소스라친 이브여

 

앉고, 가고, 쉬고, 일어난 구름의 때가 시간이고 밤과 낮인 일상

구름이 머물다간 언덕에 진(陣)을 치고

가네스바네아의 열 명의 정탐꾼처럼 의심했지

보암직한 금 돼지 형상에 절했지

깜깜속에다 엄마처럼 방치한 주인이

광야생활 38년 나의 악행을 빙글빙글 심판했지

 

머리털을 파고드는 빗방울, 이 끝에서 저 허리로 우는 빗물

이브를 데려 간 빗방울이 되었지

 

저기 다가오며 부서지는 내 실루엣

그 나라를 다 걸어 온 이브의 바람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임은호 시인

1966년 김포에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중앙대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2009년 부천 신인문학상, 2014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 2017년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2019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