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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민 시인 / 식탁 위에 그대를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6.

허민 시인 / 식탁 위에 그대를

 

 

그대를 올려놓은 적 있다, 미안하지만 식탁 위에

환한 낮이었고 우리의 겨울

 

아니다

조금만 건드리면 가녀린 음을 울리는

클래식 기타였다

떨어지는 낙엽 하나가

문신으로 새겨진

 

늘 새로운 악보를 그렸다

식탁 위에서

그대의 허벅지 위에서

아름답다고 여기던 것은 늘 매번 다음날이 되면 산산이 부서졌다

 

또 태어났지

식탁 위에 기타를 안고 누웠었지

그대가,

처음엔 늘 잔잔한 선율로 조금씩

흐르다가

 

차디찬 불덩이가 되어 언제나 거칠게 식탁의 속삭임은 끝을 맺었지만

 

찢기고 절망하며 다음 밤에 또

난생 처음 태어나는 음악을 그리고, 새기고

어제와 다르게

어제와 다르게

죽을 것처럼,

그래야 사는 것처럼

 

식탁 위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기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비린 것들을 우리는 천천히 캔버스에 스케치했지

했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허민 시인

1983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4년 웹진 《시인광장》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