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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하 시인 / 그 밖의 나는
기껏 지나온 여름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네 발로 다니던 어젯밤의 이상한 꿈에서처럼 어색한 믹스커피의 온도를 견딘 것은 내가 한 나쁜 일입니다
끔찍한 냄새 때문에 간혹 집으로 가는 길을 잃기는 하지만
내 손엔 아주 많은 지도가 있으니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도 안에는 몽롱한 안개를 통제할 수 없는 낡은 도시가 많아서 검정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볼우물이 깊게 패인 여자를 보았나요?’
그 여자는 이곳으로 오는 길을 모릅니다
꽃이 피고 지는 일에도 행간마다 빨강이나 검정 부호가 필요한데요 아직도 낯선 집에서 여름처럼 시를 쓰거나 시간과 같은 속도로 살고 있지 않은 것은 내가 하는 가장 나쁜 일입니다
산재된 일들을 이해할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수정되는 시간에 대해 아주 놀란 체하며 작년에 외운 날짜를 마시던 와인에 표시해 놓는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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