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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구경 시인 / 어둠이 자박자박한 시간에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29.

박구경 시인 / 어둠이 자박자박한 시간에

 

 

  파릇한 봄날 쑥이 불러서 쑥에게 갔다가 검은 비닐이 얼굴에 두 겹씩이나 들러붙어서 허겁지겁 도망쳐야했던 것처럼 그 귀신같은 비닐만 보면 보는 족족 발로 밟아버렸건만 오늘 집밖에서 누가 자꾸 나를 불러 김창순여사인가 하니 무언가가 이상해 모르는 발소리에 모르는 기척이라 가만히 앉았다가 바로 물러서 가까운 방에 가 숨죽이고 있으니 이것이 한두 놈이 아니라 이제 이걸 어쩌나! 여차 하면 불이란 불은 다 켤 준비하고 휴대폰도 꼭 쥐고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으니 바로 그놈들의 웅성거리는 한복판을 차 소리가 붕붕거리더니 돌아가신 내 엄마 김창순여사도 아니고 도둑들도 아닌 아들이 깜깜한데 불도 안 켜고 뭐 하냐며 문을 두들기는 것이어서 헛기침으로 나아가 살살 찾아보니 바람은 미안한 듯 귀신이 저 검은 비닐봉지에 붙었다고 전깃줄과 나뭇가지와 땅바닥을 가리키고는 슬며시 사라지는 것이니 접시만큼 얼어붙은 얼음에도 꼼짝없이 다리 하나를 잡힌 비닐봉지는 자박자박 걷지도 못하고 그 기운이 다한 듯 엎드려 굽실거리니 어둠이 봄볕 같다고나 할까 여보세요 김창순여사!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월호 발표

 

 


 

박구경 시인

1956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 1996년 《문예사조》에 <하동포구 기행> 등 5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진료소가 있는 풍경』,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등이 있음. 경남일보 기자를 지냄. 현재 민족문학작가회의·경남작가회의 회원이며 '얼토'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