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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식 시인 / 구(口)
개는 비에 젖은 채 거리를 가로지른다 갈수록 잃어버릴 길이 줄어든다, 개는 천둥소리에 놀라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춘다 누구라도 자신의 꼬리에만 몰두하는 법이다 그릇모양으로 함몰된 지붕에 담기는 비 약자요 병자인 하늘, 물병을 기울여 목마른 자들의 목을 축여준다 애초부터 내 갈빗대 속에는 여자가 아니라 불안이 들어있던 것을 텔레비전 속엔 42일 만에 깨어나 처음으로 우는 서른 살의 아이 누군가의 마음이 절박하게 쏟아지기 때문에 비는 퍼붓고 태어난다는 것은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눈 뜨는 것 절뚝거리는 갈색 말이 관광객을 태우고 아름답게 휜 해변을 배회한다 알의 세계란 모두가 조금씩 타원형이고 극락도 도솔천도 결국 뜻 모를 오솔길 하지만 까닭 없이 우산살이 부러지는 작은 파국만으로도 내 손바닥엔 흉이 생기고 떠돌이 개가 그 흉을 물고 늘어지고 입 안에 침과 눈물이 고이고 문득 구(口)가 생기고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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