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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전기철 시인 / 헝겊 철학자

by 파스칼바이런 2020. 7. 30.

전기철 시인 / 헝겊 철학자

 

 

  어머니는 아직도 헤매고 있으리라.

  리어왕의 거친 얼굴을 하고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내며

  티격태격 걷고 있으리라.

 

  머리가 모자란 동생이 가출한 뒤

  어머니는 달이라도 채집하려는 듯

  산으로 들로 다니다가

  공원을 떠도는

  사색을 주워 모으기도 한다.

 

  어쩌다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어머니의 옷에서는

  개들이 물어뜯은 창백한 우울이나

  허수아비의 앙상한 웃음이 떨어진다.

 

  머릿속에

  화장지가 가득 들어 있는

  광야의 리어왕

  자신의 운명에 트집을 잡으며

  영혼에 딱지를 붙여 버린

  미친 오필리어

 

  절대로 동생을 대신할 수 없는

  우리들은

  빼빼 마른 어머니의 그림자 속에서

  동생이 두고 간

  헝겊 인형을 다그친다.

  어머니가 만지는 어둠의 깊이

  어디에 철학자가 있는지

  누가 어머니의 운명에 낙서를 해 놓았는지…….

 

웹진 『시인광장』 2012년 2월호 발표

 

 


 

전기철 시인

1954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 전남대와 서울대학 대학원서 석.박사 과정 수료. 1988년 《심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나비의 침묵』 등과 평론집 『민족문학과 비평정신』 번역서 『시가 있는 금강경』등이 있음. 현재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며 『유심』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