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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 3월
어차피 어차피 3월은 오는구나 오고야 마는구나 2월을 이기고 추위와 가난한 마음을 이기고 넓은 마음이 돌아오는구나 돌아와 우리 앞에 풀잎과 꽃잎의 비단방석을 까는구나 새들은 우리더러 무슨 소리든 내보라 내보라고 조르는구나 시냇물 소리도 우리더러 지껄이라 그러는구나 아, 젊은 아이들은 다시 한번 새옷을 갈아입고 새 가방을 들고 새 배지를 달고 우리 앞을 물결쳐 스쳐가겠지 그러나 3월에도 외로운 사람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쓸쓸하겠지
나태주 시인 / 6월 기집애
너는 지금쯤 어느 골목 어느 낯선 지붕 밑에 서서 울고 있느냐 세상은 또다시 6월이 와서 감꽃이 피고 쥐똥나무 흰꽃이 일어 벌을 꼬이는데 감나무 새 잎새에 6월 비단햇빛이 흐르고 길섶의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은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나는데 너는 지금쯤 어느 하늘 어느 강물을 혼자 건너가며 울고 있느냐 내가 조금만 더 잘해주었던들 너는 그리 쉬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가진 것을 조금만 더 나누어주었던들 너는 내 곁에서 더 오래 숨쉬고 있었을 텐데 온다간다 말도 없이 떠나간 아이야 울면서 울면서 쑥굴헝의 고개 고개를 넘어만 가고 있는 쬐꼬만 이 6월 기집애야 돌아오려무나 돌아오려무나 감꽃이 다 떨어지기 전에 쥐똥나무 흰꽃이 다 지기 전에 돌아오려무나 돌아와 양달개비 파란 혼불꽃 옆에서 우리도 양달개비 파란 꽃 되어 두 손을 마주 잡자꾸나 다시는 나뉘어지지 말자꾸나
나태주 시인 / 9월이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 대추는 대추나무 가지 위에서 익고 너는 내 가슴속에 들어와 익는다
9월이 지구의 북반구 위에서 서서히 물러가는 동안 사과는 사과나무 가지를 떠나야 하고 너는 내 가슴속을 떠나야 한다
나태주 시인 / 가시나무 새의 슬픈 사랑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모를 것이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변방의 둘레를 돌면서 내가 얼마나 너를 생각하고 있는가를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까마득 짐작도 못할 것이다. 겨울 저수지의 외곽길을 돌면서 맑은 물낯에 산을 한 채 비춰보고 겨울 흰 구름 몇 송이 띄워보고 볼우물 곱게 웃음 웃는 너의 얼굴 또한 그 물낯에 비춰보기도 하다가 이내 싱거워 돌멩이 하나 던져 깨드리고 마는 슬픈 나의 장난을
2. 솔바람 소리는 그늘조차 푸른빛이다. 솔바람 소리의 그늘에 들면 옷깃에도 푸른 옥빛 물감이 들 것만 같다.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조차 그만 포로소롬 옥빛 물감이 들고 만다면 어찌겠느냐 어찌겠느냐.
솔바람 소리 속에는 자수정빛 네 눈물 비린내 스며 있다. 솔바람 소리 속에는 비릿한 네 속살 내음새 묻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 마음조차 그만 눈물 비린내에 스미고 만다면 어찌겠느냐 어찌겠느냐.
3. 나는 지금도 네게로 가고 있다. 마른 갈꽃내음 한 아름 가슴에 안고 살얼음에 버려진 골목길 저만큼 네모난 창문의 방안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는 빨강 치마 흰버선 속의 따스한 너의 맨발을 찾아서 네 열게 발가락의 잘 다듬어진 발톱들 속으로.
지금도 나는 네게로 가고 있다. 마른 갈꽃송이 꺾어 한 아름 가슴에 안고 처마 밑에 정갈히 내건 한 초롱 네 처녀의 등불을 찾아서. 네 이쁜 배꼽의 한 접시 목마름 속으로 기뻐서 지줄대는 네 실핏줄의 노래들 속으로
나태주 시인 / 강물과 나는
맑은 날 강가에 나아가 바가지로 강물에 비친 하늘 한 자락 떠올렸습니다 물고기 몇 마리 흰구름 한 송이 새소리도 몇 움큼 건져 올렸습니다 한참동안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오다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믿음이 서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을 기르다가 공연스레 죽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나는 걸음을 돌려 다시 강가로 나아가 그것들을 강물에 풀어 넣었습니다 물고기와 흰구름과 새소리 모두 강물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날부터 강물과 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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