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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태주 시인 / 숲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9.

나태주 시인 / 숲

 

 

비 개인 아침 숲에 들면

가슴을 후벼내는

비의 살내음.

숲의 샅내음.

 

천 갈래 만 갈래 산새들은 비단 색실을 푸오.

햇빛보다 더 밝고 정겨운 그늘에

시냇물은 찌글찌글 벌레들인 양 소색이오.

 

비 개인 아침 숲 속에 들면

아, 눈물 비린내. 눈물 비린내.

나를 찾아오다가 어디만큼 너는

다리 아파 주저앉아 울고 있는가

 

 


 

 

나태주 시인 / 시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 속에

시 하나 싹 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나태주 시인 /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부비며 우는 철부지

어린아이이고 싶다.

 

사람의 냄새와

사람의 껍질을 벗고서도

또 사람이고 싶다.

 

작은 바람에도 살아 쓸리는 여린 풀잎,

미세한 슬픔에도 상처받아 우는 작은 별빛,

드디어 나는 나만 아는

차고 맑고 그윽한 향기를 머금고 싶다.

 

 


 

 

나태주 시인 / 안부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나태주 시인 / 어쩌다 이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있다 가고 싶었는데

아는 듯 모르는 듯

잊혀지고 싶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대 가슴에 못을 치고

나의 가슴에 흉터를 남기고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나의 고집과 옹졸

나의 고뇌와 슬픔

나의 고독과 독선

그것은 과연 정당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과연 좋은 것이던가

사는 듯 마는 듯 살다 가고 싶었는데

웃는 듯 마는 듯 웃다 가고 싶었는데

그대 가슴에 자국을 남기고

나의 가슴에 후회를 남기고

모난 돌처럼 모난 돌처럼

혼자서 쓸쓸히.

 

 


 

나태주(羅泰柱) 시인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 1963년 공주사범학교 졸업.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대숲 아래서』를 비롯, 『누님의 가을』, 『막동리 소묘』,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풀잎 속 작은 길』, 『슬픔에 손목 잡혀』, 『산촌 엽서』, 『쪼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 등과 산문집 『외할머니랑 소쩍새랑』, 『시골사람 시골선생님』, 동화집 『외톨이』 등이 있음.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화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황조근조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