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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 젊은 딸들에게
딸들아, 우리 나라의 젊고 이쁜 딸들아, 이제 우리나라에는 가을이 가고 가을 풀벌레들의 강물 소리도 얼어붙고 낡은 무덤과 지붕들 위에 지친 산맥들 위에 순백의 흰눈이 내려 덮여야 하는 겨울이 온다.
그러나 딸들아, 나는 오늘 잘 여문 벼이삭 수수이삭들을 보며 너희들의 잘 여문 가슴을 생각하고 잘 익은 콩꼬투리며 팥꼬투리들을 보며 너희들의 그 이쁜 발가락 손가락을 생각한다. 또한 딸들아, 감나무 가지 위에 마지막 남은 홍시를 보며 너희들의 탐스런 대리석의 젖가슴을 생각하고 가을 하늘같이 맑고 맑은 눈빛을 생각한다. 생각하고 생각한다.
겨울에도 얼지 않고 속삭이는 작은 시냇물 소리를 그 가슴 안에 가진 딸들아, 보다 더 많이 눈에 덮여 은은히 살 부비며 흐느끼는 솔바람 소리를 그 가슴 속에 지닌 딸들아. 너희들은 햇빛 속을 희고 빛나는 이빨로 웃으며 크고 튼튼한 알종아리로 종종종 걷다가도 돌아와선 수틀 앞에 조용히 앉을 줄도 알고 방안의 그 큰 고요의 호수 속에도 잠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러므로 딸들아, 우리나라의 젊고 이쁜 딸들아, 나는 오늘 믿는다. 너희들의 가슴의 그 고요한 호수만을 믿는다. 믿고 또 믿는다.
나태주 시인 / 천천히 가는 시계
천천히, 천천히 가는 시계를 하나 가지고 싶다
수탉이 길게, 길게 울어서 아, 아침 먹을 때가 되었구나 생각을 하고 뻐꾸기가 재게, 재게 울어서 어, 점심 먹을 때가 지나갔군 느끼게 되고 부엉이가 느리게, 느리게 울어서 으흠, 저녁밥 지을 때가 되었군 깨닫게 되는 새의 울음소리로만 돌아가는 시계
나팔꽃이 피어서 날이 밝은 것을 알고 또 연꽃이 피어서 해가 높이 뜬 것을 알고 분꽃이 피어서 구름 낀 날에도 해가 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꽃의 향기로만 돌아가는 시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가고 시도 쓸 만큼 써보았으니 나도 인제는,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 하나쯤 내 몸 속에 기르고 싶다.
나태주 시인 / 첫차
낯선 고장 낯선 여관방에서 하루 밤 묵고 일어나 깨끗한 이부자리에게 감사하고 밤새도록 선잠 든 얼굴 비춰준 전등불에게 감사하고 푸석한 얼굴 씻어줄 맑은 수돗물에게도 마저 감사한다 이 새벽아침에도 따끈한 국물을 파는 밥집이 열려 있었구나 밥을 먹으면서도 감사하고 깍두기를 씹으면서도 감사한다 지금껏 내가 사랑한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새삼스럽지 않은 깨달음에도 짐짓 소스라치며 진저리치며 어둠을 뚫고 가는 자동차에게 감사하고 운전기사에게도 감사해야지 나 오늘도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첫차로 떠난다 세상 속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나태주 시인 / 행복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나태주 시인 /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입니다...
나태주 시인 / 내가 너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를 좋아하는 마음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너에 대한 나의 그리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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