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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선희 시인 / 누란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10.

장선희 시인 / 누란

 

 

  제 몸 허옇게 드러내는 곳 있네

  떠도는 자의 헤진 옷자락 같은 물줄기

  그곳은 타클라마칸의 젖줄이라네

  퉁퉁 분 젖줄을 거슬러 은고기 찾던 사내들

  솟대로 솟은 소하묘 나무, 그 속을

  바람은 거룻배처럼 드나들었네

  소금 기둥에 매여 있던 누란 미녀

  배 형상 관 속에 누워 사천 년을 건너왔네

  바람의 뼈 같은 희미한 목소리

  초원 가득 돋아있네

  모래바람으로 떠돌던 사내들이 머물다 간 로프노르*

  한번은 여자를 살고

  또한번은 남자를 살기 위해

  돌아와야 하는 땅

  오아시스가 있었다던 그곳

  목마름은 수천 년 물을 마셔도 달랠 수 없는 걸까

  이정표 없이 걸어온 맨발이 목젖을 드러내는 누란

  길 잃는 것은 죽음과 같아서

  사랑은 모래바람으로 돌아와 쌓이는데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땅**

  머리에 꽂힌 해오라기 깃털 멀리 던지고

  나, 헛구역질하듯 소금호수에 들어서네  

 

* 많은 강물이 흘러들었던 호수

** 위구르어로 타클라마칸의 뜻

 

웹진 『시인광장』 2012년 7월호 발표

 

 


 

장선희 시인

1964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2년 제1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2008년 월명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