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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용택 시인 / 들 국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5.

김용택 시인 / 들 국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무슨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져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김용택 시인 / 별 하나

 

 

당신이 어두우시면

저도 어두워요

당신이 밝으시면

저도 밝아요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있는 내게

당신은 닿아 있으니까요

힘내시어요

나는 힘없지만

내 사랑은 힘있으리라 믿어요

내 귀한 당신께

햇살 가득하시길

당신 발걸음 힘차고 날래시길 빌어드려요

그러면서

그러시면서

언제나 당신 따르는 별 하나 있는 줄 생각해 내시어

가끔가끔

하늘 쳐다보시어요

거기 나는 까만 하늘에

그냥 깜박거릴게요

 

 


 

 

김용택 시인 / 별일

 

 

양말도 벗었나요.

고운 흙을 양손에 쥐었네요.

등은 따순가요.

햇살 좀 보세요.

거 참, 별일도 다 있죠.

세상에, 산수유 꽃가지가

길에까지 내려왔습니다.

노란 저 꽃 나 줄 건가요.

그래요.

줄게요.

다요, 다.

 

 


 

 

김용택 시인 / 보고싶어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

보고 싶은 마음을 돌리려고

아무리 뒤돌아서고 뒤돌아서도

당신은 나보다 빨리 도시어

내 앞을 가로막고 서 계십니다

당신이 보고 싶어요

보고 싶은 이 마음을

어디에다 다 감추고

보고 싶다는 이 말을

어디다 다 하겠어요

보고 싶어요

당신.

 

 


 

 

김용택 시인 / 봄 옷 입은 산 그림자

 

 

그저께 엊그저께 걷던 길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걸었습니다

 

그저께 엊그저께 그 길에서

어제 듣던 물소리

오늘은 어데로 가고

새로 찾아든 물소리 하나 듣습니다

 

문득 새로워 걷던 발길 멈추고

가만히 서서 귀기울여봅니다

 

아, 그 물소리 새 물소리

봄옷 입은 산그늘 강 건너는 소리입니다

 

 


 

김용택(金龍澤, 1948 ~ ) 시인.

전북 임실 출생. 순창농림고등학교를 졸업. 1982년 “21인 신작 시집”에 ‘섬진강’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섬세한 시어와 서정적인 가락을 바탕으로 농촌의 현실을 노래하였다. 섬진강 곁에 거처를 두고 초등 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그는 이제까지 시집 『섬진강』(1985) · 『맑은 날』(1986) · 『누이야 날이 저문다』(1988) · 『꽃산 가는 길』(1988) · 『그리운 꽃편지』(1989) · 『그대, 거침없는 사랑』(1993) · 『강 같은 세월』(1995) · 『그 여자네 집』(1998) 등을 펴낸 바 있다. 김용택은 1986년에 ‘김수영 문학상’, 1997년에 ‘소월 시문학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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