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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 들 국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무슨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져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김용택 시인 / 별 하나
당신이 어두우시면 저도 어두워요 당신이 밝으시면 저도 밝아요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있는 내게 당신은 닿아 있으니까요 힘내시어요 나는 힘없지만 내 사랑은 힘있으리라 믿어요 내 귀한 당신께 햇살 가득하시길 당신 발걸음 힘차고 날래시길 빌어드려요 그러면서 그러시면서 언제나 당신 따르는 별 하나 있는 줄 생각해 내시어 가끔가끔 하늘 쳐다보시어요 거기 나는 까만 하늘에 그냥 깜박거릴게요
김용택 시인 / 별일
양말도 벗었나요. 고운 흙을 양손에 쥐었네요. 등은 따순가요. 햇살 좀 보세요. 거 참, 별일도 다 있죠. 세상에, 산수유 꽃가지가 길에까지 내려왔습니다. 노란 저 꽃 나 줄 건가요. 그래요. 다 줄게요. 다요, 다.
김용택 시인 / 보고싶어요
당신이 보고 싶어요 보고 싶은 마음을 돌리려고 아무리 뒤돌아서고 뒤돌아서도 당신은 나보다 빨리 도시어 내 앞을 가로막고 서 계십니다 당신이 보고 싶어요 보고 싶은 이 마음을 어디에다 다 감추고 보고 싶다는 이 말을 어디다 다 하겠어요 보고 싶어요 당신.
김용택 시인 / 봄 옷 입은 산 그림자
그저께 엊그저께 걷던 길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걸었습니다
그저께 엊그저께 그 길에서 어제 듣던 물소리 오늘은 어데로 가고 새로 찾아든 물소리 하나 듣습니다
문득 새로워 걷던 발길 멈추고 가만히 서서 귀기울여봅니다
아, 그 물소리 새 물소리 봄옷 입은 산그늘 강 건너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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