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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민 시인 / 중독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5.

허민 시인 / 중독

 

 

그 모임에서 나는 나의 세계 속에 있었다

 

당신들은 기타를 치고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 속에 있었지, 외롭지 않기 위해 나는 분명 당신들과 모닥불을 피웠는데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하나둘 잠드는 사람들과 길게 남아 이야기 나누는 이들

 

별은 맑은 날이 아니라 오래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대화를 들었지, 창가의 근처에서 나는 아직 잠들지 않고

 

아니 잠들었는지도, 긴 모임의 소요와 고독 속에서 나의 기타 줄 하나는 오래전 그 팽팽한 현을 스스로 끊었는지도

 

긴 별의 꼬리가 밤하늘의 동맥 하나를 부러 잘라냈듯이

 

물들어가는 출혈이 창가 너머 바닷가로 차오르는 밤

 

나는 그 세계 속에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그 세계의 백사장에 홀로 나와

기다림을 걷고 있었지

 

오래부터 아니 그 전부터

매 시절 기다림에 중독되었는지 몰라

 

나와 똑같이 새벽, 이 아침을 몰래 빠져나와 모래밭의 세계를 걷고 있는 한 사람을

 

그런 사람을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라는 세계를 끌어안고

계속 계속 써나가는 발자국의 문장   끊어진 현 하나의 절벽으로 울려퍼지는 한 마디 시(詩)처럼

 

나는 그 세계에 홀로 나와 앞서 걷고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는지도 몰라

 

모임의 한 자리에서부터 오래 보아온

 

오직 한 사람을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그가 어서 빨리 이 세계 속에 들어오기를, 한 가득 외로움의 가련함으로,

그렇게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8년 7월호 발표

 

 


 

허민 시인

1983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4년 웹진 《시인광장》을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