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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원 시인 / 탱자나무 담장
몇 벌의 바람 옷을 갈아입고 담장의 설계도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탱자나무 가시 길다란 담장을 주문받고 바느질이 한창이다
이파리들 이어 붙이는 저 바늘 끝
뾰족하게 끝으로만 몰려가는 따끔거리는 방향과 쓰고 남은 바늘들이 엉켜 있고 바늘 위로 바늘이 솟구치며 찌르니 흰 꽃 따던 손 맵시가 낱장으로 떨어진다
안쪽이나 바깥이나 一色이어서 숭숭 드나드는 바람은 제 얼굴을 잊어버리기도 일쑤다 옹골진 내력도 없고 안으로만 삭여야 하는 비밀도 없는 가시 담장
담을 깁는 유전자, 종족을 먼저 알아보고 가시들이 달라붙어 엉키어 간다
문을 열자 순(筍)끝으로 창세기가 펼쳐진다 가시의 유치(乳齒)는 무늬만 닮은 초록의 식물성, 그 기세를 꺾으려는 듯 여릿여릿 내리는 비 빗방울을 이어 붙여 장마에 든다 연두색 부피가 부풀어 오르고 박새, 참새, 오목눈이, 굴뚝새들이 들락거리며 둥지에 기둥을 세운다
밖도 안도 없는 담장이 하는 일은 몇 걸음 더 늘려 문을 만들고 지나가는 헛기침 두어 번을 소리 내어 내뱉는 일 시고 떫은 실밥들로 담은 쌉쌀해져간다
담장을 똑똑 따다가 술을 담그면 세상의 모든 실밥들이 풀리어 간다
웹진 『시인광장』 2012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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