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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채 시인 / 시뮬라시옹
로자, 이 고약한 늙은이한테 지도에도 없는 룩셈부르크를 샀어요. 바로크적이고도 종말론적인 이 도시에서 장 보드리야르는 제국주의자들처럼 파이프를 입에 물고 말장화를 신고 있지요. 로자, 시뮬라시옹, 시뮬라시옹…하면서 룩셈부르크로 가요. 새가 되고 싶어 하는 물고기, 섬 아닌 섬으로 가기 위해 룩셈부르크로 가요. 당신과 나는 거짓말을 튀겨 별과자를 만들고, 알바트로스는 별과자를 먹느라 주위를 빙빙 돌지요. 뮬란 애완 카페를 지나 다크 사격장에서 당신은 탕! 탕! 탕! 나를 향해 총을 쏘지요. 나는 팬시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져요. 초상화를 그리는 이름 없는 화가가 우리의 모습을 크로키 해요. 시뮬라시옹, 시뮬라시옹… 로자, 룩셈부르크의 파란 잔디가 떠올라요. 나는 전단지처럼 오필리어가 되어 물 위에 떠가요. 여기는 룩셈부르크예요. 나의 침묵 안에 햄릿인 당신이 누워 있어요. 바다가 오로라 빛으로 흔들리면 당신은 “오! 로자” 하며 깨어나지요. 오, 시뮬라시옹, 시뮬라시옹…. 나의 로자, 나의 룩셈부르크.
월간 『현대시』 2019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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