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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은 시인 / 컨베어밸트를 타고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7.

이은 시인 / 컨베어밸트를 타고

 

 

  바람 부는 날은 시멘트 가루가 몸에 잘 들러붙어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지질 않는다

  느닷없이 바람이 불고 모래와 석회가루가 섞이고

  컨베어밸트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둑에 앉아 컨베어밸트를 바라본다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 쓴 강물, 물 밑에 가라앉은

  시멘트 덩어리들

  밸트 돌아가는 소리가 강물 위에 쌓이고

  바다에는 시멘트가 쌓여간다

 

  나는 태어나면서 시멘트 분진을 먹고 자랐다

 

  맑은 하늘도 시멘트였고 구름 낀 하늘도 시멘트였고

  양철 지붕도 시멘트였고 토끼털도 시멘트였고

 

  새 한 마리 날아가지 않는 아침

  시멘트를 실은 컨베어밸트가 생을 싣고 간다

  빨랫줄에 앉은 시멘트 새가 느릿느릿 숨이 막혀 갈 때

  나는 컨베어밸트를 타고 바다로 간다

  딱딱해진 폐, 서걱대는 눈

  바다로 가는 레일 위에 내가 누워있다

 

웹진『시인광장』 2012년 6월호 발표

 

 


 

이은 시인

1957년 강원 동해에서 출생. 서울여자대학 졸업. 중앙대예술대학원 졸업. 2006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2009 문화예술위 창작기금 수혜. 시집으로 『불쥐』(지혜, 2012)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