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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 새로운 길
나는 신문을 한 1년쯤 묵혔다 읽는다 어떤 때는 2, 3년, 더한 때는 10년이 지난 신문을 읽을 때도 있다 그렇게 읽어도 새로운 소식을 담은 신문이 내게는 정말로 신문이 될 수 있기 때문
나는 남들이 새로운 길이라고 소리치며 달려가는 길은 가지 아니한다 오히려 사람들이 왁자지껄 그 길을 걸어서 멀리 사라진 뒤 그 길이 사람들한테 잊혀질 만큼 되었을 때 그 길을 찾아가 본다 그런 뒤에도 그 길이 나에게 새로운 길일 수 있다면 정말로 새로운 길일 수 있기 때문
나에게 새로운 길은 언제나 누군가에게서 버림받은 풀덤불에 묻힌 낡은 길이다.
나태주 시인 / 석류꽃
이 꽃은 예로부터 고요하고 아름다운 동방의 나라 아침 이슬 냄새가 묻어나는 꽃.
이 꽃은 이 땅에 대대로 생겨나서 발뒤꿈치가 달걀처럼 이쁜 새댁들의 웃음소리가 들어 있는 꽃.
허물어진 돌덤불 가에 장독대 옆에 하늘 나라의 촛불인 양 피어 선연히 그 며느리들을 대대로 내려가며 투기하는 이 땅의 시어머니들의 한숨 소리도 들어 있는 꽃.
앞으로도 이 땅에서 끊이지 않고 생겨나서 발뒤꿈치가 달걀처럼 이쁠 새댁들의 웃음소리가 연이어 들어 있을 꽃. 연이어 들어 있을 꽃.
나태주 시인 / 선물
나에게 이 세상은 하루 하루가 선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빛이며 새소리, 맑은 바람이 우선 선물입니다 문득 푸르른 산 하나 마주했다면 그것도 선물이고 서럽게 서럽게 뱀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강물을 보았다면 그 또한 선물입니다 한낮의 햇살 받아 손바닥 뒤집는 잎사귀 넓은 키 큰 나무들도 선물이고 길 가다 발 밑에 깔린 이름 없어 가여운 풀꽃들 하나 하나도 선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지구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지구에 와서 만난 당신, 당신이 우선적으로 가장 좋으신 선물입니다 저녁 하늘에 붉은 노을이 번진다 해도 부디 마음 아파하거나 너무 섭하게 생각지 마서요 나도 또한 이제는 당신에게 좋은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나태주 시인 / 섬에서
그대, 오늘 볼 때마다 새롭고 만날 때마다 반갑고 생각날 때마다 사랑스런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풍경이 그러하듯 풀잎이 그렇고 나무가 그러하듯이.
나태주 시인 / 수선화
언 땅의 꽃밭을 파다가 문득 수선화 뿌리를 보고 놀란다. 어찌 수선화, 너희에게는 언 땅 속이 고대광실 등 뜨신 안방이었드란 말이냐! 하얗게 살아 서릿발이 엉켜 있는 실뿌리며 붓끝으로 뽀족이 내민 예쁜 촉. 봄을 우리가 만드는 줄 알았더니 역시 우리의 봄은 너희가 만드는 봄이었구나. 우리의 봄은 너희에게서 빌려온 봄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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